수신인 없는 편지, 그 열네 번째 이야기
뒤죽박죽 변해 버린 문장들. 이제는 내 곁을 떠나 버린, 너무도 사랑했던 친구들. 하루에도 수백 번씩 머리께를 조여 오는 두통과 천둥번개처럼 노여운 시선들. 스무 살의 나에겐 그것들을 견딜 힘이 없었다.
병증에 대해 자세히 밝히면, 귀여운 참새처럼 작고 여린 독자님들이 충격을 받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증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그 시절의 나는 몸이 둘로 쪼개지는 듯한 고통을 홀로 견뎌왔다는 것만 말해두고 싶다.
옥상에 선 날, 나는 내게 평생 할당된 양의 눈물을 모두 흘린 기분이었다. 계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겨울이었을 것이다. 볼을 타고 흐르던 말라 버린 눈물 자국들이 얼음 조각처럼 느껴지도록, 찬 바람이 불었다.
겨울 바람에 단단하게 굳은 눈사람처럼 멈춰 선 나의 시선에 들어온 무언가. 그건 동네 교회의 빨간 십자가였다.
종교가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십자가를 보는 순간 마지막을 떠올리는 슬픈 마음을 누군가 꼭 안아주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마지막을 보고 싶은 게 아니라, 행복해지고 싶었던 거구나.'
그 길로 더 이상 옥상을 찾지 않았다- 고 하면 드라마 속 해피엔딩이겠지. 이후로도 빨간 십자가의 위로가 필요할 때면, 종종 옥상을 찾아 그날의 울음 할당량을 채우고 돌아가곤 했다.
지금까지도, 내가 본 십자가가 어떤 교회의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 다음 이야기는, 일상생활을 하고 꿈을 꿀 수 있을 만큼 병세가 나아졌다는 뭐 그런 내용이다.
내가 낫게 된 것은 가족들의 설득으로 정신과 상담을 다니면서부터다. 만약 그때 상담을 받고 약을 먹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일을 하고 꿈을 꾸는 나는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이 글을 빌려, 혹시나 정신과 상담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늦기 전에 병원에 가보라고 말하고자 한다. 나처럼 일상을 잃고 아픔에 지배당하기 전에, 마음의 감기를 치료하길 권유하고 싶다.
그래서, '프롬은 있고 투는 없습니다' 는 더 이상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쓸 수 없게 된 나의 글쓰기 재활 프로젝트다. 어린아이들도 쓸 수 있는 것이 편지인 만큼, 나에게 편지는 쓰기에 부담감이 덜한 글이었으니까.
이전에는 뒤죽박죽된 문장을 원래대로 돌려 보려고 매일 한 권씩 책을 읽고, 글을 쓰기도 했다. 마치 다이어트 할 때처럼, 남들이 좋다고 하는 책은 다 가져다 읽었다. 맞춤법 책, 작법 서적, 소설, 희곡 (희곡은 중간에 읽다가 포기했다), 시, 수필 등.
그럼에도 다시 긴 호흡의 습작을 써내는 데에는 번번히 실패했다. 어쩌면 부담감 때문이 아닌가 싶어, 이렇게 편지글로 나의 글쓰기 허파에 산소를 불어넣고자 한다.
p.s. 편지를 통해 그리운 감정을 모두 덜어낸 다음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을 쓰고 싶다.
제목은, Dear My.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