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먹일 과일을 골랐다. 바나나와 귤을,
모양 좋고 빛깔 좋은 사과를 조심스럽게 골라서 바구니에 담았다. 이 사과처럼 예쁜 것들만 마음에 담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픔, 슬픔, 원망, 분노 같은 것들 말고, 기쁨, 행복, 환희, 설렘 같은 감정들만 골라 담으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과가 담긴 검은 봉지 안에서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봉지를 열어보니 사과 대신 맥주와 소주병만 서로 엉켜 있었다. 나는 그날로 돌아갔다.
차가운 밤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은 골목길을 지나며 어둠을 밝히는 따듯한 불빛들을 바라본다. 손에 닿을 수 없는 빛이 무심하게 검은 땅을 비춘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술이 든 봉지를 낚아챈 엄마는 삼촌들의 술상을 차리고, 담배 연기 자욱한 방안에서는 화투가 한창이다.
나는 손바닥만 한 건넌방에 들어가 웅크리고 앉아 티브이를 켠다. 명절 특집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다들 예쁜 색의 한복을 입고 뭐가 그렇게 좋은지 배꼽을 잡고 웃는다. 삼촌들과 외숙모들 엄마와 할머니의 웃음소리들이 공허한 집안을 채운다. 열 평 남짓한 방이 가득 차 있지만 텅 비어있다.
공부는 잘하냐/엄마가 너 때문에 재혼도 못하고 사는데 네가 잘해야지/잘해라, 엄마 많이 도와라/말 잘 들어라./너는 어떻게 클수록 니 아비를 닮아가냐/네가 빨리 돈 벌어서 엄마 도와라
나는 마치 마녀재판을 받는 것처럼 그들의 집단에서 이방인으로 존재한다.
그들은 질문에 대답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첫 번째 질문의 답을 생각하는 가운데 그다음 질문이 이어지고, 또 그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같은 질문들이 몇 년째 반복되는 것을 보며 그들이 원하는 것은 대답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복종이었다. 복종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이었다. 엄마를 보았지만 엄마는 그들의 무리에 섞여 있었다.
내가 아버지를 닮았다는 그들의 말이 좋은 의미가 아니라는 건 색깔로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유의 색깔이 있다. 말에도 얼굴에도.
두꺼비같이 생긴 주인집 할머니는 이끼 색이 섞인 검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조금 젊었던 주인집 아줌마는 짙은 회색의 말을 했는데 다들 아름다운 색깔들은 아니었다.
내가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 색은 멀리 드리워진 오렌지빛의 노을이다. 아빠가 사라진 후 아름다운 색은 그것뿐이다. 너무 아름다워서 슬픈 색이다. 노을이랑 비슷한 색은 다 슬프다. 귤도 당근도.
나를 재판할 때 그들의 색은 아무것도 섞일 수 없는 검은색이었다. 그 어떤 타협도 다름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색, 고집스럽고 답답하게 사람을 가둬버리는 색... 보이지 않는 검은색에 갇힌 채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꾸역꾸역 밥을 먹고 집 밖에 나가 모조리 토해냈다. 토하느라 눈물이 나는 건지, 화가 나서 눈물이 나는 건지, 숨이 막혀서 눈물이 나는 건지는 알 수 없다.
잘은 모르지만 내게는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것 같다. 그건 아마도 내가 나이기 때문인 것 같은데 나는 아버지의 딸이어서도 안되고, 나여서도 안 되는 것이다. 엄마를 도와주고 행복하게 해주어야 하는 존재, 그녀의 배경, 아니, 그녀의 구원자여야 했다.
그녀는 내게 문제(?)가 생길 때면 그들에게 전화를 했고, 나는 그들에게 맞거나 폭언을 들었다. 나의 진로는 그들이 결정했고, 나는 따라야 했다. 따르지 않으면 그에 따른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했다. 사랑이 없는 체벌은 폭행에 불과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몸의 통증이 아니라 나를 낳아주신 분이 그것을 보고만 있었다는 데 있었다.
그녀를 위한 사람으로, 40여 년을 살았다. 그녀의 생각이 내 생각인 줄 알고, 그녀가 나인 줄 알고, 그게 사랑인 줄 알고, 아파가면서, 사랑은 원래 이렇게 아픈 거라고 생각하면서 삶은 원래 그렇게 고통스러운 건 줄 알고 살았다. 내가 없이, 빈 껍데기로 살아왔다.
자유로워야 했을 내 어린 숨을 뒤덮어버린 검은색들은 자라면서 과연 사라졌을까?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죠.
아이가 부모의 보호자가 될 수 있나요?
아이가 어른을 보호할 수 있나요?
부모가 아이를 보호해야 하는 겁니다.
아이에게 보호자의 역할을 강요하는 것은
정서적 학대입니다.
이제 나는 어른이 되었고, 그들은 더 이상 나를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의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린 그러한 관념은 너무나 단단해서 뽑아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들은 나의 초자아를 형성했고, 나는 지배당했다. 나는 관념의 노예가 되었다. 내 양손과 다리를 묶은 쇠사슬을 끊고 자유를 향해 오렌지빛의 노을 속으로 달려갈 수 있을까. 노을의 끝에서 아버지가 팔 벌린 채 나를 맞아 주실까. 나는 그를 만나고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을까. 이러한 마음의 무늬를 지닌 채 과연 행복해질 수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