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상실을 경험한다. 엄마 뱃속의 안락함과 따스함을 상실하고 세상에 던져진다.
아이는 던져진 기억도 없이 던져졌고,
엄마와 하나인 줄로만 알다 어느 날 깨닫게 된다.
엄마는 자기가 아니라는 걸, 아이는 자신이었던 엄마를 상실하는 것이다.
아이는 다시 자기만의 세상을 얻는다. 자기만의 장난감, 자기만의 공간, 쉬고 잠자고, 괴롭거나 슬플 때 언제나 머물 수 있는 엄마와 함께인 세상 속에서 안정을 취한다. 그러나 아이는 유치원에 가야 하므로 머물렀던 세계를 다시 상실해야만 한다.
처음에 아이는 몹시 불안하지만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고 원래의 세계를 영원히 상실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몇 년 뒤, 또다시 정든 세계를 상실한다. 학교에 입학해야 하기 때문이다.
익숙했던 세계를 상실한 아이는 모든 것이 다른, 또 다른 세계를 맞는다. 아이는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애쓴다. 이제 상실은 더 짧은 간격으로 1년에 한 번씩 반복된다. 정든 친구를 상실하고 익숙한 교실을 상실한다.
아이는 비슷하지만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간다.
반복되는 상실 속에서 이제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기 시작한다. 익숙했던 원래의 자신을 상실하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새로운 자기로서 어른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아이는 이제 더 넓은 세상을 얻는 대신 자기의 반을 상실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아이는 반쪽의 자신으로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간다.
시간이 흐른 후 아이는 사랑하는 이를 만나는데 그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몇십 년을 함께한 안식처를 상실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아이는 다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다.
어느덧 노년을 바라보는 아이는 부모의 영혼을 상실하고 그 육신을 땅에 묻는다. 수많은 상실을 건너왔지만 상실의 아픔은 여전히 날카로움을 진심으로 깨닫게 된다.
아이는 이제 상실의 두려움에 빠진다. 그래서 어른이 된 자식도 곁에 두고 싶고, 돈도 상실하고 싶지 않고, 건강도 상실하고 싶지 않다. 상실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너무나 많아졌지만 결국 언젠가는 이 모든 것들을 상실할 시간이 도래하고야 말리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상실을 조금 더 미루기 위해 발버둥 친다.
망설이던 여행을 가고 싶지만 이미 건강의 상실이 진행 중이었고, 그토록 많았던 시간도 자꾸만 상실되고 있었다.
그동안 많은 상실을 반복하며 얻었던 것들이 조금씩 휘발하는 중이었다.
아이는 마지막으로 노인이 되어 그동안의 모든 기억을 상실하게 된다. 그 상실은 마지막 상실에 대한 준비과정이다. 기억을 상실하므로 마지막 상실의 아픔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많은 것들을 상실해왔고, 앞으로도 상실할 것이고, 결국은 상실되고야 말 모든 삶을 진심으로 지지한다.
상실함으로 무겁지만 무겁지 않을 수 있고 아프지만 아프지 않을 수 있다.
상실해야 나아갈 수 있다. 나아가므로 끝이 온다.
단정한 마침표에 고개를 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