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밖에 가을이

오는 것은 막지 말고, 가는 것은 보내기를.

by 흔들리는 민들레



올해 여름은 그 어떤 계절보다 치열했고 뜨거웠다.

지겹도록 비가 왔고, 빗물이 강을 이루었다. 그런가 하면 마치 전혀 그런 적이 없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자외선을 퍼부었다.


이제는 여름내 덮던 이불을 바꿔야 하고, 밤새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을 때가 되었다. 여름내 신던 신발을 바꿔야 하고 얇은 긴팔을 꺼낼 때가 되었다.


한 계절이 끝이 나고 다른 계절이 시작이 되듯 아무리 거부해도 오는 일이 있고 아무리 붙잡고 싶어도 떠나는 일이 있다. 내가 내 삶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생각이 무색하고 민망하게 오는 일이 있고 떠나는 일이 있다. 오는 것을 막지 못하고 가는 것을 막지 못하는데 번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시도를 하고야만 마는 나의 어떤 면을 집착이라고 봐야 할지, 생명력이라고 봐야 할지 모르겠다.








팔이 다쳐서 피가 철철 났다. 어진 피부 사이로 근육과 뼈가 보였다. 큰일이 났다 싶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 사람은 피부가 벌어져 근육과 뼈까지 드러난 출혈 가득한 내 팔을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이 사람 미쳤나 하는 생각이 스치던 찰나 전혀 아프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왜지? 상처가 이렇게 심한데 왜 아프지 않는 거지.. 어리둥절한 내게 그 사람이 말했다.


" 별거 아니네요. "


그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더니 가던 길을 갔다. 나는 혼자 남아 생각했다. 왜지... 이렇게 상처가 심한데, 스치기만 해도 기절할 것 같이 생겼는데 왜 아프지 않는 거지... 그럼 이 상처는 뭐지...








꿈속에서 나는 보기만 해도 흉측한 상처를 당연히 아플 거라 생각했고, 그 사람은 내 상처를 별 거 아니라고 했다.

꿈을 꾸고 난 후 어쩌면 이제는 별 것이 아닌 일이 된 많은 일들을 아직도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미지의 대상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제 너는 아프지 않다고, 이제는 과거를 놓고 나아가라고.


내 인생에서 벌어졌던 아픔과 고통은 아무리 피하고 싶었어도 반드시 일어날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동시에 그 아픔과 고통들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결국은 떠날 수밖에 없 일이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것들은 마치 계절처럼 왔고 다시 갈 것이었지만 그때는 그 아픔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을의 문턱에 서서 뜨거웠던 여름을 보낸다.

하나의 아픔과 고통이 떠나면 또 다른 아픔과 고통이 찾아오는 것, 그런 거대한 순환의 과정 속에 가끔, 아주 가끔 증정품처럼 기쁨이나 행복이 끼워오는 것, 어쩌면 그런 게 삶인도 모르겠다.

가을의 문턱에 서서 치열하고 뜨거웠던 여름을 보내려고 한다. 물론 내가 보내지 않는다고 해서 가지 않을 계절도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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