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은 나쁜가?

아기의 의존

by 흔들리는 민들레



의존 : 다른 것에 의지하여 존재함




의존은 나쁜 것이다.

때때로 의존은 할 수 있지만, 독립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라는 게 나의 확고한 의지였다.





의존은 나쁘죠.
가끔 의존해야만 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되도록이면 독립적으로 주체적으로 살아가야죠.
어른이라면 그래야죠.




의존이 나쁜 것이냐고 묻는 의사의 질문에 하늘은 머리 위에 땅은 발밑에 존재한다는 몹시 당연한 사실을 설명하는 것처럼, 아니 뭐 그런 당연한 걸 묻냐는 듯 나는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어왔다.




그런가요?





나는 역시 확고한 진실을 증언하듯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한테 의존은 부정적인 개념이었다.

왜 그랬을까?

인간은 원래 사회적 동물이다. 그리고 때때로 의존을 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

우리는 실연을 당하면 친구에게 술을 사달라고 한다. 친구는 실연당한 친구를 위로한다.

그건 일종의 의존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것도 일종의 의존이다.

수많은 동물 중에 인간 아기만이 몹시 불안정한 상태로 태어난다. 혼자서 숟가락을 잡고 자발적으로 밥을 떠먹기까지 보통 7~8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인간의 직립보행으로 출산이 빨라졌다. 그래서 아기는 미숙한 채 세상에 태어난다.

인간 아기는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부모와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정서적 거리를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의존한다.

아기는 부모로부터 자신의 자아존중감을 확립하게 되고, '나는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는 믿음은 아기의 평생을 좌우한다. 아기는 그 믿음으로 시련에 대응할 정서적 근력을 기르게 된다.

만국 공통의 주제가 '사랑'인 것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의존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인지 알 수 있다.





1970년대부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연구해 온 세계적인 학자 베셀 반 데어 콜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와 어른에게 질문지의 답변을 작성하게 하는데 그 질문지에는 반드시 포함되는 질문이 있다고 한다.


"내가 무서운 순간 의지할 만한 사람이 있었는가?"


그의 질문을 나는 내게 묻는다.

나는 무서웠던 순간 의지할 만한 사람이 있었던가?





어린아이 같고 뭐든 신나게 여기는 부분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모습이다.
학대받으면 바로 이 부분이 가장 크게 상처를 받고, 고통과 공포, 학대로 느낀 배신감을 간직한 상태로 굳어 버린다.
짊어진 부담은 독과 같이 유해한 영향을 발산한다. 자신의 일부분인데도. 무슨 수를 쓰든 거부해야 하는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몸은 기억한다-베셀 반 데어 콜크>





나는 어디에도 의존하고 싶지 않았다.

병원에서 마음이 편해지라고 주는 약물에도 의지하고 싶지 않았고, 사람에게도 의지하고 싶지 않았다.

힘들어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았고 도움을 받으면 마음이 불편해서 당장에라도 다른 방식으로 갚아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는 고민 상담자였고 정작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는 아무도 없었다. 아마 친구들은 내가 혼자서도 잘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성인이 되고 내가 유일하게 의존하는 사람은 배우자였지만, 그도 내게 이야기했다.

독립적으로 주체적으로 살라고. 아마, 그런 말을 했던 데엔 이유가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나는 독립적 삶을 추구했지만, 사실은 독립적이지 못했었다.

남편을 놓아주지 못하고 의지해서 친구들로부터 남편 바라기라는 말을 들었다. 결혼 12년 동안 그렇게 남편 바라기로 살았다.

나는 의존을 나쁜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의 내 모습은 의존적이었다.

내가 원하는 나는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나였고, 원래의 나는 의존하고 싶은 나였다.




어린 나는 의존하고 싶었다. 하지만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엄마는 내 의존을 받아줄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돌봐줄 사람이 없어 고열을 안고 학교로 향할 때, 파란 하늘에 흩날리던 만국기처럼 많은 친구의 부모들이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어줄 때, 아버지와 이별하고 난 후 친하지 않은 친척집에 맡겨졌을 때, 그때에 느꼈던 외로움, 공포, 혼란, 두려움, 슬픔, 공허감 같은 감정을 느끼던 모든 순간에 나는 의지할 곳이 없었다.

엄마는 내가 지켜줘야 할 사람이었다. 그 작은 아이가, 제 한 몸도 잘 지키지 못할 아이가 엄마를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지만 그녀는 나를 지켜주지 않았다.

나는 의존하고 싶었지만, 엄마에게 버림받고 싶지 않아서 의존하지 못했다.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애썼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의존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의존하는 나는 나쁜 아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자신이 힘들지 않기 위해서 의존하는 아이는 나쁜 아이라고 느끼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생각의 밑바탕에는 베셀 반 데어 콜크의 <짊어진 부담은 독과 같이 유해한 영향을 발산한다. 자신의 일부분인데도. 무슨 수를 쓰든 거부해야 하는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가 있다.

나는 그동안 내 심리적 위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해 왔다.



나는 변하지 않을 부모와 환경 탓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자랐고, 지금 이러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거부하고, 경멸하고, 부끄러워했던 나의 일부분을 받아들이고, 내 안에 그런 것들이 있구나. 하고 바라보는 것이다. 내 심리적 위치를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 모든 여건들이 내가 사랑받을 가치가 전혀 없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중인 것이다.

내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나는 그 어떤 것도 선택한 적이 없다고 부모를 원망하고 분노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고, 그 어떤 것도 선택한 적이 없지만 그러한 환경이었던 것은 내 탓이 아님을, 그러한 환경이 내가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인간이어서가 아님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나는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임을 새로이 알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