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던 독립적인 내가, 엄마의 그림자라고 해도, 어쨌든 내 안에 있었으므로 그것 또한 거기 있었구나 인정하고 있다.
친척들은 혼자된 엄마에게 재혼을 권유했다.
어린 나는 무서웠다. 엄마가 다른 아저씨랑 살게 되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또 어디로 맡겨지는 건가 라고 생각했다. 또다시 엄마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 공포에 떨었다. 엄마는 결코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다.
엄마에게 사랑받고,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내가 선택한 방식은 독립적인 모습이었다.
아이지만 뭐든 혼자서 했고, 힘들고 괴로워도 입을 다물었다. 마음껏 어리광을 부려본 적 없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억눌렸던 그 마음은 남편을 만나면서부터 터져버리고 말았다.
사랑받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신뢰를 받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를 남편으로 인해 알게 되었다.
생애 최초의 사랑과 인정과 신뢰였다.
동시에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랑이었다.
뜨겁게 조건 없이 사랑했고, 그런 내 사랑을 그는 종종 부담스러워하기도 했다.
우리는 7년의 연애 끝에, 결혼식을 올렸다.
연애한 기간과 결혼 후 같이 산 기간까지 합치면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올해로 19년째이다.
19년 동안 별의 별일을 다 겪었다.
희로애락이 온통 뒤범벅된 시간이었다.
돌아보면 그는 나와 함께 한 시간들 대부분을 부담스러워한 것 같다.
엄마 때문에 괴로울 때, 육아로 지칠 때, 몸이 아플 때 남편에게 내 모든 감정을 털어놓았지만, 그는 오랜 시간 동안, 나의 호소에 큰 공감을 하지는 못했다. 그의 그런 모습을 보고 나는 다시 한번 실망했고, 우리의 시간들은 불행의 철로 위를 달리며 언제 멈출 줄 모르는 고장 난 기차처럼 위태로웠다.
반복되는 나의 의존에, 그는 지쳐가는 듯했다.
더 이상의 대화도, 감정의 교류도 힘겨운 듯했다.
건조한 일상의 반복 속에서 나는 엄마와의 문제로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결국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병원을 찾았다.
상담을 하면서 나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나를 인식하자 타인의 영역을 존중하게 되었다.
나의 자아를 바라보았고, 타인의 자아를 존중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자신을 존중하지 못해 타인까지 얼마나 존중하지 못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내 자아가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타인 자아의 소중함도아는 것 같다.
나는 그에게 의존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싶었고, 그 사랑에 집착했다. 의존하면서, 독립적인 척 해왔다.
그게 나의 애정 갈구 방식이었고, 그걸 몰랐던 그는 괴로웠을 것이다.
그것을 성찰하지 못했던 나는, 그는 왜 내 감정에 공감하지 않는지, 그는 왜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지, 그는 왜 그렇게 이기적인 건지 원망만 할 뿐이었다.
역시 세상에 사랑은 없었다며, 이제 난 사랑을 믿지 않는다며 스스로를 위로할 뿐이었다.
이 모든 것들 즉, 내 마음의 작동방식을 알고 난 이후, 나는 남편을 포함한 사랑하는 이들에게 해왔던 많은 요구와 강요들을 거둬들였다.
아이들에게 관철시키던 일방적 요구들을 거둬들이고, 아이의 자아와 감정을 인정하니, 반발심과 반항이 줄어들었다.
남편의 자아를 인정해주고 그의 영역을 존중하니,
혹시 며칠 후에 가정법원에서 만나는 거냐고 물어왔다. 그에게 나의 변화는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를 알게 된 19년의 기간 동안 한 번도 허락하지 않았던 친구들과의 여행을 허락하며 말했다.
그동안 서툰 나와 사느라 너무 고생했다고, 이제는 좀 자유를 누리라고, 신나게 놀고, 실컷 즐기다가 와도 된다고 했다.
처음에 그는 내게 미쳤느냐고 묻다가, 담엔 바람피우냐고 묻다가, 담엔 정말 괜찮은 거냐고 묻다가, 그 담엔 혹시 돌아갈 때 이혼 서류를 준비 해 가야 하냐고 묻다가, 또 그 담엔 혹시 자기만 두고 몰래 이사 가는 거 아니냐고 묻다가, 마지막으로는 그 병원에서 너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물어왔다.
사랑의 근육
인간몸의 근육이 대략 800여 개라고 하는데, 사랑에도 수많은 근육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동안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던 사랑의 다른 근육을 사용하려고 한다.
서툴고 미숙했지만 어른 딱지를 달고 그것을 인정하려들지 않았던 긴 고통의 시간들, 그러한 고통의 시간을 함께 견뎌준 나의 가족들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미안하다.
나는 독립적인 인간을 추구한다면서 의존적이었던, 말과 행동의 불일치에서 오는 혼란을 거둬들이고,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의존(의지하여 존재함)이 아니라, 의지(어떤 대상에 마음을 붙여 도움을 받음) 할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려 한다.
버려질까 봐 의존하지 않으려 했던 존재방식을 버리고, 내 마음이 진정 원하는 대로 살아가려고 한다.
나만이 아니라 타인도 함께 존중하며,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처럼 한 발 또 한 발 걸어보려 한다.
넘어질 것 같으면 가끔 의지도 하면서, 버림받지 않기 위해 도와달란 말조차 할 수 없던 어린 시절을
교훈 삼아 종종 도움도 요청할 것이다.
힘들면 도와달라고 할 수도 있는 거고, 때로는 의지할 수도 있는 것이라는 걸,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버려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