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는, 최악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나 자신이 싫을 수 있는지, 어쩌면 그렇게 증오스러운 사람이 천지에 수두룩한지 그런 감정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망나니 같은 감정들이었다. 통제도 안되고 회유도 전혀 통하지 않는 감정들..
우울은 나를 다채로운 마음의 세계로 초대했다. 오만가지 감정이라는 말이 있듯 우울은 단 두 글자였지만 그 안에는 정말 오만가지 감정이 들어있었다. 그건 진짜 맞는 말이었다. 인간에게 그렇게나 많은 감정들이 있는지 몰랐다.우스갯소리인 줄만 알았던 그 말이 실제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인 줄은 몰랐다.
다른 종류의 감정들
다른 종류의 감정들
억누르려 할수록 감정은 더 뜨거워졌다. 폭우가 내리는데 뛰어간다고 비를 덜 맞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맞는 양은 똑같으니까 그냥 걷기로 했다.
우울을 통과하며 많은 감정을 충분히 느꼈으므로 감정이 모두 소진되어 버린 줄 알았다. 그러나 다 말라버린 우물같던 마음에서 신기하게도 다른 감정들이 흘러나왔다. 소박한 기쁨, 작은 희망, 기대, 감사, 뿌듯함 같은 감정들이었다.
그제야 비로소 아.. 나는 우울의 강을 지나왔구나, 아픈 감정들을 모두 보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이 무척 대견했다. 감사하고 뿌듯하고 기뻤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 형편없고 살아야 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나는,
나라는 사람은 나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는 것, 존재의 의미는 어떤 성취나 겉모습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을 아주 깊이, 깨달았다.
존재 자체로서의 의미를 느끼고 나니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괜찮아졌다. 어떤 모습이라도 괜찮으니 어떤 것을 잘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니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잠재력의 발견
한 번도 발휘된 적 없던 잠재력의 발견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의 글을 모아 <산다는 것은 흔들리는 일이다> <뜨겁게 이별하고 차갑게 사랑하라>라는 두 권의 책을 자가출판 했고 직접 홍보를 했다. 제주도 서울 경기 열 곳이 넘는 독립서점에 책을 우편으로 보내기도 하고 갈 수 있는 곳은 직접 찾아가 드리고 오기도 했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일곱 분께 책을 보냈다. 무료 서평을 써주시는 열 분께 DM을 보내 동의를 받아 책을 무료로 보내드리고 서평을 부탁드렸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고 그동안 꾸준히 써왔던 블로그 브런치에도 계속 글을 썼다. 개인적으로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엄마로서의 역할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매일 쓸고 닦고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냈다. ADHD 치료를 받아야 하는 작은아이를 데리고 병원과 놀이치료를 다녔다.
고단한 일정들이 반복되었지만 괜찮았다. 힘들면 언제든 그만할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알았다. 최선을 다하고 난 뒤에만 후회 없이 깨끗하게 그만둘 수 있다는 것을. 그만둬도 괜찮다는 것을. 우울증을 통과하고 나서야 그동안 얼마나 통제할 수 없는 일들에 집착해 왔는지를알게 되었다.
책을 쓰고, 출판하고, 홍보하고, 발로 뛰었던 일은 온전히 나를 위한 일이었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원하고 나를 위한 일. 한 번도 그렇게 살아보지 못했던 나를 위한 일이었다. 그리고 집안의 반대 때문에 하지 못했던 대학공부를 하기 위해 특별전형으로 원서를 냈다.
너 그러다 죽어.
떨어졌지만 괜찮았다. 사이버대학에 입학했고
빨래, 청소, 식사준비, 설거지 등 집안일을 하는 시간 외에는 무조건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했다. 하루 평균 다섯 시간 이상 강의를 듣고 공부했고 시험기간에는 12시간 동안 공부했다. 아직 어린 작은 아이가 오십 번, 백 번, 말을 걸어와도 오십 번 백 번 엄마가 공부를 해야 하니 이따 식사시간에 얘기하자고 답하면서 공부했다.
스터디 카페도 나만의 공부방도 아닌 거실 한편에 책상을 놓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공부했다. 시험기간에는 새로 산 펜을 뜯어 쓰기 시작해 이틀 만에 다 쓰고 새 걸 또 뜯어 이틀 만에 다 썼다. 형광펜과 빨간펜과 파란 펜 일고 여덟 개를 절단 내면서 공부했다.
자신이 없었다. 한 번도 공부를 잘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유튜브에 좋은 공부법을 설명해 주는 분들의 영상을 찾아보면서 공부해 봐도 감이 오지 않아 무조건 반복했다. 같은 것을 열 번 읽었다. 오랜 시간 앉아있으니 허리 엉덩이 골반에 무리가 와서 힘들었지만 머리가 나쁜 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열심히 했다.
책상 앞에 너무 오래 앉아 있는 나를 본 남편이 말했다. 너 그러다 죽는다고. 스스로 죽으려던 오랜 시간이 있었는데 그보다는 공부하다 죽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마음 한 편에서 들었다.
그렇게 첫 학기 첫 시험에서 여섯 과목 중 반은 A+을, 반은 A를 받아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성적을 확인한 날 가족들 몰래 혼자 우느라 휴지 반통을 써 버렸다.
반쯤 열린 창문에서 봄이 스민 부드러운 바람과 함께 너 같은 게 무슨 대학 타령이냐는, 허파에 바람만 들어서 주제를 모른다는 친정식구의 말이 흘러들었다. 참 많이 기쁘고 참 많이 아픈 날이었다. 이제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