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창문을 열자마자 수분을 머금은 바람이 흘러들었다. 며칠 전까지 늦봄의 낭창낭창한 바람이 불었는데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조금은 선뜩한 바람이었다.
당분간은 입을 일이 없을 줄 알았던 카디건을 옷장에서 꺼내 입고 우유를 데웠다. 삑삑. 경쾌한 전자레인지 버튼음이 고요한 집안에 울렸다.
전자레인지가 우유를 데우는 동안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에 비구름의 흔적이 남아있다. 비구름이 아직 떠나지 않았구나... 혼잣말을 하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비구름이 남아있는 아침에 딱 어울릴만한 쇼팽의 녹턴이 생각났다. 말러의 아다지에토도 좋을 것 같았다. 녹턴을 다 들은 다음에 아다지에토도 들어야지.
쇼팽은 슬프게 아름답다. 그리고 어떤 부분은 히스테릭하기도 하다. 말러의 아다지에토는 한 편의 영화를 귀로 듣는 것 같다. 서정적이면서도 슬프다. 소설 <제인에어>를 음악으로 만든 것 같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도 좋아하는데 피아니스트 손민수 씨가 연주한 곡은 특히 더 좋다.
사랑하므로 계속 모르고 싶다.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마다 느낌이 다르다. 미세한 차이 같지만 느껴지는 감정이 다르다. 드뷔시의 달빛도 백건우 씨와 조성진씨가 연주하는 곡이 다르다. 백건우씨가 연주하는 달빛은 피아노로 달빛을 마구 뿌려대는 느낌이라면(봐~~ 내가 달빛이야, 너무 아름답지? 이 달빛 너희들에게 흠뻑 적셔주겠어!) 조성진씨가 연주하는 달빛은 달빛이 내리는 텅 빈 해변을 혼자서 걸어가는 고요하고 담담하고 외로운 느낌이다. 백건우씨가 연주하는 달빛이 거대하고 가까운 달이라면 조성진씨가 연주하는 달빛은 멀어서 그리운 달이다.
베토벤의 음악은 구조적이고 극적이다. 그리고 무척 정서적이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거대한 형용사 같고, 바흐의 음악은 명석함과 예술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건축가 같다. 맨델스존과 슈만은 부드러운 롤케이크 같은 느낌이다. 두 사람이 만든 곡들이 비슷한 느낌이라서 왜 이렇게 비슷하지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두 사람이 친한 친구라고 한다.
피아노 연주곡들을 좋아해서 주목받는 연주자들의 연주도 찾아서 들어보는데 손여름씨의 연주는 굉장히 다채롭고 유연하다. 날개를 뽐내는 공작새처럼 아름답고 최근 주목받는 임윤찬 군의 연주는 창의적이고 몰입적이다. 창의에 파묻혀 있는 느낌, 어디론가 튕겨나갈 것 같은데 신기하게 몰입하고 있다. 탱탱볼이라고 해야 하나. 말랑말랑하고 유연하고 틀에 갇혀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입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개인적으로 조성진씨의 연주를 특히 좋아하고 많이 듣는다. 그의 연주에는 결코 토해지지 않는 슬픔이 있다. 빠른 곡에도 느린곡에도 밝은 곡에도 어두운 곡에도 모든 곡에 있다. 나이와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슬픔이라서 이력을 찾아본 적까지 있을 정도다. 이 젊은 친구는 왜 이렇게 슬프지... 하면서. 막 대놓고 크게 울면 차라리 덜 슬플 거였다. 그런데 안 우는 거다. 분명히 있는데, 토하고 싶은데 토해지지 않는 슬픔은 토하는 슬픔보다 배는 아프다. 손민수씨의 연주도 너무 좋다. 섬세한 몰입,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고요함과 부드러운 단단함 있다. 감정과 이성이 적절히 균형 잡혀 있는 것 같다. 특히 그가 명동성당에서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너무 좋아서 툭하면 듣는다. 들을 때마다 좋다. 질리지도 않는다.
기술적으로는 전혀 알지 못한다. 정확한 음을 연주하는지 마는지 어떻게 연주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건 느낌뿐이다. 클래식에 대한 지식이 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해석이나 해설을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이고 그래서 혹시 내 감정이 지식에 영향을 받게 될까 봐 알지 않으려고 한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느낌으로 본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내 블로그에는 영화에 대한 글들도 있는데 다른 분들의 영화소개글은 전혀 읽지 않는다. 혹시 나도 모르게 타인의 감상평으로 내 감정에 영향을 받게 될까 봐서이다.
클래식을 모르지만 사랑하고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모르고 싶다. 알고 싶지 않다는 건 감정 안에 두고 싶다는 뜻이다. 알게 되는 순간 이성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린다. 예술만큼은 감정 안에 있었으면 좋겠다. 이성으로 분석적 두뇌로 살기보다, 감성으로 감정적 두뇌로 살고 싶다. 따듯하고 고요하게.반짝이는 별을 발견하면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