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주방 창문을 여는 일이다. 밤새 묵은 공기를 빼고 신선한 공기를
맞이하기 위해서인데 그때마다 보는 사람이 있다.
주방 창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사거리에는 아침마다 교통을 정리하시는 경찰이 계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태풍이 오나 늘 계신다. 영하의 강추위에도 폭염이 있는 날에도, 교통량이 많고 등하교하는 아이들이 많은 아침시간대에도 언제나 계신다. 그분은 등하교 시간이 끝나면 경찰 오토바이에 올라타 유유히 사라지는데 항상 혼자 왔다가 혼자 가신다. 잠자리 선글라스와 모자를 쓰고 계시기 때문에 얼굴을 본 적은 없다.
날이 좋은 봄가을에는 좀 낫지만 폭염이 있는 여름이나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이 되면 그분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보게 된다. 핫팩이라도 챙기셨기를, 시원한 얼음물이라도 챙기셨기를 바라게 된다.
감사하다. 매일 똑같은 장소에 나타나 똑같은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덕분에 많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등교를 한다.
누군가는 감사할 이유가 뭐가 있냐고 한다. 돈을 받으실 거 아니냐고, 일하다가 은퇴하면 연금도 따박따박 나올 거 아니냐고 한다. 자기 일이라고 고마울 이유가 무어냐고 한다. 그러나 나는 감사하다. 자기 일을 매일 충실히 해 주시는 것 그것이 감사한 것이다.
내 삶이 편리하고 편안한 것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노고가 있기 때문이다. 아침밥을 짓는 누군가의 노고, 아파서 당장 찾을 병원에서의 누군가의 노고, 식재료가 필요해서 방문한 마트에 놓인 누군가의 노고, 쓰레기가 사라진 거리의 누군가의 노고, 서류가 필요해 방문한 공기관의 누군가의 노고, 매일 타는 엘리베이터가 매일 작동하기 위한 누군가의 노고, 자동차가 고장 나 수리하기 위해 찾은 수리점의 누군가의 노고, 필요한 물건 사러 갈 시간이 없어 주문하고 그 물건이 집 앞까지 오기까지의 누군가의 노고, 오늘 아침 어떤 겉옷을 입어야 할지 알려주기 위한 누군가의 노고, 해가 뜨지도 않았을 때 누군가를 일터로 데려다 주기 위해 운전대를 잡는 누군가의 노고,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수업준비를 하는 누군가의 노고, 영토와 바다를 지키기 위해서 무기를 점검하고 경계하는 누군가의 노고,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노고들로 꽉꽉 들어차있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
돈을 받지 않고 하는 일은 숭고하고 돈을 받고 하는 일은 천박한 것인가? 자기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일을 매일 해 나가는 많은 분들 덕분에 우리는 대부분의 날들에 질서와 평화를 보장받는다. 자기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은 그 사람만의 영역인 것 같지만 그런 수많은 삶들이 모여 질서와 평화가 찾아온다. 우리는 동떨어져 있지 않다. 모두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의 할 일을 충실하게 살아내고 있는 모든 분들이 다 감사하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은 천박한가? 혹은 돈을 받았으니 당연한가? 마더 테레사만 숭고한가?
정말로 천박한 것은 자기 위치에서 자기가 해야만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내가 할 일을 하고 돈을 받는 것이야말로 비리와 반칙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가장 정정당당하며 정의로운 태도가 아닐까?
현대인이 고독한 이유는 타인의 노고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의 노고를 인정한다는 것은 나의 삶이 불특정 다수의 노고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일이다. 그 자각을 놓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내 삶은 내것만이 아님을 알게 된다. 나의 노고 또한 불특정 다수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럼으로써 작은 모래알에 불과한 줄 알았던 나라는 사람이 세계와 타인과 항상 닿아있음을, 나의 영향이 생각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쩌면 '내'가 세상에게 연결을 끊기 때문에 고독한 것이지 세상이 나를 배제했기 때문에 고독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기 삶을 충실하고 성실히 살아가고 있을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당신들이 있기에 이 세상이 아름다울 수 있다. 정정당당하고 정의로운 당신, 정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