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 부모님이 나쁜 사람이라서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다만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 못할 뿐이라고. 그게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아이는물었다.
/ 엄마가 어렸을 때는 어땠는데요?
/ 엄마는... 엄마도 참 힘들었어.. 많이 혼났고 많이 미움받았지...
/ 그런데 엄마는 어떻게 착해요?
/ 엄청 노력하지, 너희가 엄마처럼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니까...
아이는 굉장히 민감하다. 제 또래보다 많은 것들을 느낀다. 오감을 다 열고 살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서 힘들겠다 싶다. 민감한 아이라서 양육도 그에 적합하게 해줘야 하는데 그게 내게는 무척 힘든 일이었다. 보통의 사람에게도 육아란 힘든 일인데 나 같은(?) 사람이 하기엔 더 어렵고 힘든 일이었고 지금도 매 순간이 어렵다. 아주아주 어려운 수학문제를 마주하고 있는 것 같다.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학대받았더라도 노력하면 다시 행복해질까?
/ 그건, 어머님 것일지도 모릅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수납장에 빼곡히 들은 다양한 장난감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러 가지의 납작한 보드게임들은 수납장 맨 위에 켜켜이 쌓여 있었고어른의 몸보다 훨씬 작은 유아용 의자에 옹색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는 내게 아이의 놀이치료 선생님은 말했다. 나는 잘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아이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유난히 을씨년스러웠다. 봄인데, 왜 이렇게 쌀쌀한지 등 언저리에 찬물이 끼얹어지는 것 같았다.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물었다.
/ 간식, 뭐 해줄까?
때로 아이를 향해 일어나는 감정이 아이 때문이 아닐 때가 있다. 내 감정의 아픈 역사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게 될 때 슬퍼진다.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정서적 학대를 받았다. 그러나 그랬는지도 몰랐다. 서른의 끝자락에서야 내가 보낸 어린 시절이 무척 혹독했으며 그 상처가 너무 깊다는 자각이 생겼다. 미리 자각했더라면 결혼이라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을 텐데 라는 깊은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받았던 학대가 아이들에게까지 조용히 흘러갈 수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열심히 했다. 학대받은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지나치게 열심히 살거나 지나치게 반항적으로 살거나. 열심히 살았다. 깨끗하게 입히고 먹이고 병원에 데려가고 조금만 아파도 불안하므로 민첩하게 움직이고... 강박적일 정도로 정말 열심히 했다. 정말 온전히, 내 두 손으로 아이들을 키웠다. 시댁 친정 누구에게도 아이들을 맡긴 적이 없었다. 유치원에 가기 전까지 오롯이 내가 키웠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진 참전군인보다 많은 숫자의 아이들이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학대를 경험한다. 가장 보호받고 안전해야 할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에서 더 심각하며 그 기억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도 굉장히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다.<베셀 반 데어 콜크-몸은 기억한다>
학대받았더라도, 노력하면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해지면 그 통증이 사라질까? 아니다. 시시때때로 그때의 기억이 올라온다. 이제는 과거의 일임에도 몇십 년 전의 일인데도 그렇다. 아이가 여덟 살일 때 나의 여덟 살을 만난다. 아이가 열세 살일 때 나의 열세 살을 만난다. 아이가 둘이니 정확히 곱하기 2다.두 번의 여덟 살과, 두 번의 열세 살과, 두 번의 열여덟 살을, 나의 그때를 만나는 것이다. 환상통 같기도 하다. 이미 잘려나간 다리에서 계속 통증이 느껴지는 것 같은..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도 불시에 찾아오는 마음의 통증들이 있다.
학대받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 같은 분들이 당연히 행복해지길 바란다. 아픈 기억 모두 잊고 당당하게 자기 인생을 누리기를 바라지만 현실적으로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나는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결혼해도 되겠냐고 누가 묻는다면 만류하고 싶다. 조금 더 자기를 치료한 후에 아주아주 깊은 숙고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 조심스러운 결정을 내렸으면 좋겠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