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모자를 쓴 남자가 하얀 공으로 저글링을 하다가 눈 깜짝할 새에 공 하나를 꽃 한 송이로 만들었다. 방금까지 하얀 공이었는데 어떻게 꽃이 됐지.. 남자는 그 꽃을 작은 화분에 심었다.다시 남자는 저글링을 하며 왼쪽신발의 풀려버린 신발 끈을 손을 대지도 않고 반대쪽 발로 움직거려 묶었다. 와~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박수를 보냈다. 남자는 또다시 저글링을 열심히 했는데 박수소리가 작아서 시무룩해졌다. 시무룩해진 남자를 보고 사람들이 박수를 많이 쳐주자 하얀 공이 꽃이 되었다. 남자는 두 번째 꽃을 화분에 심었다. 남자는 또 꽃을 만들어 내기 위해 각종 묘기를 부렸는데 잘 안 됐다. 그래서 스스로엉덩이를 때렸다. 여러 번 시도하는데 공은 꽃이 되지 않았다. 한참을 시도한 끝에 결국 또하나의 꽃이 만들어졌다.
마지막 화분은 높은 곳에 걸려있었다. 남자는 높은 곳에 있는 그 화분에 꽃을 심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했다. 하얀 공을 던져도 보고 높이 뛰어보기도 했으며사다리를 부서트리기도 했다.
남자는 화나. 열심히 노력했다고. 이걸 내가 다시 하나 봐라.라고 말하는 듯 가방을 싸서 집에 가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가방이 움직이지 않는 거다. 얘 왜 이러는 거야. 가방과 한참 씨름을 하던 남자는 하는 수 없이 다시 저글링을 했다. 그리고 뚝딱뚝딱 사다리를 고쳤다. 그는 아슬아슬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결국 높은 화분에 꽃을 심어 내고야 말았다.
거리공연을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은 그의 성공에 박수를 보냈다. 빨간 모자를 쓴 남자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저의 모든 것입니다. 그리고 제 인생의 모든 것은 지금 이 순간입니다.
축제 안에서
축제 안에서.
모두가 거리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즐겁게 웃었고 놀랍게 행복했다. 나무 위에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작은 알전구들이 바람이 불어 저희들끼리 부딪혔다. 그러자 반짝이는 소리가 났다.
나는 빨간 모자를 쓴 그 남자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눈물이 터져 나왔다.
수많은 실패, 좌절과 자책,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꽃을 심어내고야 마는 그의 아름다운 익살이 슬프고도 웃음이 났다.
빨간 모자의 그 남자에게서 나를 보았다. 수없이 넘어지고 실망하고 자책하길 반복하면서도 어느새 또 글을 쓰고 있는 나. 화나. 어떻게 더 하라고. 이 이상 어떻게 더 해. 열심히 했단 말이야! 이제 다시 하나 봐. 그만할 거라고. 가방을 싸는 나. 그러다가 또그 남자처럼사다리를 고치고 있는 나.어떻게든 꽃을 심기 위해 두려움을 참으며 사다리를 올라가는 나.
쓰는 일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그 남자처럼 내가 이걸 다시 하나 봐라. 하며 가방을 싸고 푸는 일을 반복하면서도 계속 쓰고 있다. 하얀 종이 앞에서, 빈 화면 앞에서,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내가 설마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던 의문점들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 신기하게도 두 권의 책을 썼다. 책이 얼마나 팔렸고 사람들이 내 책을 얼마나 아느냐보다 더 신기한 것은 내가 그 책을 썼다는 사실이다.
아이와 어른의 차이
진짜 살아있는 <존재>란
눈에 보이는 판매량과 수익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나만의 성취다.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해냈다는 것이 나는 더 중요하다.
빨간 모자를 쓴 거리의 예술가가 <내 인생의 모든 것은 지금 이 순간>이라고 한 말처럼, 정말 소중한 것은 느낌이자 감정이다. 그는 무대 위에서 관객의 인원을 세지 않았다. 자신의 일당을 계산기로 두드리지도 않았다. 다만 그 순간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순간에 그는 가짜가 아닌 진짜 <존재>였다. 그가 진짜 존재가 되었던 이유는 느낌에 자기를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객관이나 이성이 아닌 느낌을 살았기 때문이다.
진짜 <살아있는 존재>는 지금 이 순간,순간의 느낌을 산다.
아이는 세계와 자기 사이에 아무것도 두지 않지만
어른은 세계와 자기 사이에 무수한 것들을 둔다.
그것이 바로 아이와 어른의 차이며 행복과 불행의 차이다.죽은 채 사는 것이 아니라 진짜 살아가는 것에는 그런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