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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리는 민들레 May 14. 2023

18. 스승과 어버이 은혜는 예전부터 진부했다.

메이저가 아니라 마이너로 살겠습니다.




진부한 스승과 어버이 은혜



진부한 스승과 어버이 은혜


  가정의 달 5월은 은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낳아 주시고 길러주셨으며,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이신 부모님의 은혜, 하늘 같은 스승의 은혜를 갚아야 하는 달이 아니던가.


 나는 은혜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부채가 예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갚는다는 말은 무언가를 빌렸을 때 쓰는 말이 아닌가? 나는 부모님과 스승님께 무언가를 빌린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뭘 갚으라는 건지 모르겠다.


 '하늘 같은' 스승의 은혜라면,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라는 부모님의 은혜라면, 보답받을 것을 예비하고 은혜를 베푸시는 인간계의 기브 앤 테이크 같은 것을 바라시진 않을 텐데 말이다.


 스승과 부모님은 정말 그렇게 위대했나? 글쎄... 하고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것은 왜일까. 내가 만났던 많은 스승님들과 여러 부모님들은 그렇게 위대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 노래들을 작사하신 분은 대체 어떤 스승과 부모님을 만나신 건지 물을 수 있다면 좋겠다.(어느 지역에서 그런 스승을 만났는지만이라도.)


 졸업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스승님들이 계셨고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도 그랬다. 나의 학창 시절 초중고 12년 동안, 정말 그분은 잊을 수 없는 스승님이셨다는 분은 단연코 없었다.(좋지 않은 의미에서 기억나는 분들은 아주 많다)

그분들은 나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개별적인 인간이었다. 그저 아이들이 많은 직장을 선택하신 분들에 불과할 뿐.






버려진 감사


버려진 감사


 부모님은 어떤가? 부모님의 은혜는 정말 하늘 같은가? 버리지 않고 길러주셔서? 부모님은 자녀를 왜 낳는 걸까? 인생이 너무 행복하므로? 기쁘고 환희가 가득한 세상이라 아이가 꼭 살게 해주고 싶어서?

이 세상이 너무 좋아서 삶을 꼭 살게 해주고 싶다는 부모님들은... 없었다. 대부분 결혼에 따라오는 절차로서 출산을 선택하거나 아이 키우는 즐거움을 경험하고자 선택했다. 아이를 위해서 임신과 출산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물론 모든 스승님들과 부모님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 어딘가에는 훌륭하신 스승님들이, 훌륭하신 부모님이 계실 것이다. 나는 만나지 못했지만 내가 만나지 못했다고 해서 모두가 다 그렇다고 일반화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정해야 할 부분도 있다. 


  임신과 출산의 본질을 보려면 <아이 자체>가 아니라 부모의 내면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선택에는 진화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측면 영향을 미치니까. 대를 잇기 위해서든, 아이에게 아름다운 인생을 경험하게 해 주기 위해서든 임신과 출산의 선택은 부모에게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그 후의 책임도 부모에게 있는 것이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다 하는 것은 어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도 자녀가 은혜를 갚아야 한다거나, 혹은 잘 키워주셨으니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효도를 해야 한다는 등의 말들을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선택은 부모가 했지만 책임은 자녀가 져야 하는 것일까? 버리지 않고 키워주었으니 감사해야 할까? 왜 버리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할까? 버린 사람은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버렸으니까. 그렇다면 키운 것에 대한 대가를 바라는 길러준 부모의 마음은 타당한가?






부모는 문(door)이다


부모는 문(door)이다


 자녀에 대한 그런 집단 심리가 스승의 은혜와 어버이 은혜라는 노래까지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를 생각하면 씁쓸할 따름이다. 감사는 받은 사람의 몫이지 베푼(?) 사람의 몫은 아니지 않을까? 감사해 준다면 고마운 것이지만 감사하지 않는다고 패륜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사회는 감사하지 않으면 패륜처럼 여기는 문화가 있는 것 같다. (아니, 부모님 세대에 있는 것 같다)


 놓고 감사를 요구하는 부모님들을 아주 많이 보았다. 키워준 대가를 요구하고 그 대가가 충분치 않다고 느껴진다면 속상해하는 부모님들을 봤고 들었다. 아들 키워봐야 며느리만 좋은 일이라는 말들이나 그래서 아들보다는 딸들이 노후에는 더 좋다는 말들이 여기저기 부유한다. 어떤 집 자식은 어디를 여행 보내주고 뭐를 사줬다는 말들이 커피집에만 앉아 있어도 여러 차례 들려온다. 어떤 부모님은 직장 다닌다며 아이를 맡기는 식들을 리켜 지들 돈 아끼려고 자기한테 애를 맡기는 거라고 한다. 그 부모님에게 자녀에 대한 걱정이나 안타까움은 0.1%도 찾아볼 수 없다. 

어떤 부모님들은 힘들었던 삶을 자녀에게 보상받기를 대놓고 바라, 어떤 부모님들은 끊임없이 요구하면서도 자기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고 한다. 전자나 후자나 보상을 바라기는 매한가지데.


 자녀는 부모의 노예가 아니다. 자녀는 부모의 도구도 아니다. 부모는 자녀의 문(door) 일뿐이다. 이 세상으로 오기 위해 통과해야 했던 문. 문은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지 가둬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 않을까? 가둬지기 위해 만들어진 문은 감옥에 있다. 랑이라는 이유로, 너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자녀에게 감옥을 선물하시는 부모님들을 너무나 많이 보았다. 그래서 나는 5월이 싫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너무나 큰 달이기 때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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