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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리는 민들레 Aug 21. 2023

7. 가난병과 부자병, 모두가 아프다.

당신과 나의 고통




가난함과 부유함은 병을 준다.


가난함은 피해의식 병을 갖게 한다. 늘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움직여야 하고 부지런히 사는데도 삶이 개선되기 어렵다. 전문직이 아닌 이상 치솟는 주거비와 물가보다 급여 언제나 만족스럽지 못하다. 심히 살아서 상황이 좀 개선되면 좋겠는데 열심히 사는데도 크게 개선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나보다 경제적 상황이 좋은 사람들을 보며 박탈감과 허무함을 느낀다. 그들이 아무렇지 않게 쓰는 돈이 내 한 달 월급임을 알게 될 때 앞으로 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암담하다. 자기가 자본주의의 피해자인 것 같아 억울하다. 언제나 성실하게 살아왔던 자신에게 왜 안정적인 삶이 주어지지 않는지 억울한 것이다.


부유함은 공허병을 갖게 한다. 든 기회와 도전이 열려있고 모든 걸 해볼 수 있는 여유가 되지만 유감스럽게도 가야 할 길의 범주가 정해져 있다. 예를 들어 해 볼 수 있는 도전이나 경험이 열 가지라면 세 가지 이내에서 도전해 볼 수 는 것이다. 부유한 환경이 열 가지를 모두 경험해보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부유한 사람들은 부유한 환경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도전하더라도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범주 안에서 시도한다.

그 세계는 가난한 세계보다 훨씬 견고해서 벗어버리기도 내려놓기도 어렵다. 그리고 그 세계에 대한 믿음 역시 무척 확고하다. 그것은 그 세계가 따듯하고 안온하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안온함과 안정적인 조건이 자기 정체성이 되어버린다. 성장과 발전은 끝이 없음에도 그들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새로운 경험이란 자기 환경의 범주 안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것들 뿐이어서 사실상 완전한 새로운 경험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제된 새로운 도전이다.









병세의 악화


가난의 피해의식병은 시간이 갈수록 병세가 악화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혼자서만 가난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들 곁에는 가난한 부모가 있으며 그 부모들은 어떻게든 자녀가 발전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보다 자신들과 같아지기를 바란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에게는 그것이 더 익숙한 삶의 환경이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 자녀에게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자녀가 그 부모에게 무엇을 해주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슬그머니 부러움이 올라온다.

그들은 그렇지 않아도 비상하기 어려운 자녀들을 끄집어 내린다. 도약하려고 애쓰는 자녀들을 무의식적으로 방해한다. 왜일까. 억울하기 때문이다.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은 억울함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좋은 부모를 만났더라면, 좋은 환경이나 좋은 시대를 타고났더라면, 그 사람만 아니라면 이라고 하면서 고집스럽게 피해자의 포지션을 점유하려고 한다.


공허병을 가진 개인들 역시 병세가 악화된다. 혼자서만 부유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안온함을 벗어나려는 시도자체를 할 수가 없다. 그 부모들 역시 비상하려고 도약하려는 자녀의 움직임에 가드라인을 세워놓는다. 다치면 안 되니까. 더 정확히 말하면 다치는 모습을 보는 게 고통스러우니까. 다칠 자녀가 걱정이 되어서가 아니라 실은 다치는 것을 보고 싶지 않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세계는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안정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들은 자기 세계를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허하다. 공허하므로 다양한 취미를 가진다. 다양한 물건을 사본다. 그런 것들은 깊이가 없어서 다시 금방 공허해진다. 짧은 쾌락의 가짓수를 늘려가면서 아간다.









공통점


공허병 피해의식병 통점은 삶의 환경을 존재 동일시하는 데 있다. 삶이 모순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환경이 주는 조건을 뒤집어쓰고는 자신의 존재를 그것과 동일시하며 타인도 그렇게 바라보고 판단한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는 많은 문제들이 있다. 불평등, 빈곤, 차별, 폭력 등등, 그런 많은 문제들과 맞서기에 어쩌면 개인은 작고 힘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기를 날지 못하게 하는 세계를 파괴하지 않는 것이, 그 모든 모순들보다 훨씬 더 큰 모순인지도 모른다.


불합리하고 모순적인 세계를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안정적이고 안온한 세계와 자기를 동일시하면서, 공허병과 피해의식병에 머문개인의 삶은 공공의 삶으로 헌정고 만다.

당신 삶은 당신 것이다. 부모를 위한 것도 사회를 위한 것도 아니다. 병을 치유하려면 병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래야 나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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