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상실한 채 살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하기 싫은지 내가 누구인지 알아볼 경험을 성장과정 안에서 해본 적이 없다. 부모가 먼저 아이에게 묻고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자기주장을 통해 원하는 것을 획득하는 경험을 하면서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난 이런 게 좋구나, 저런 게 좋구나라는 걸 알게 되지만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
또 나는 즐거운 경험이나 기쁘고 행복한 경험을 해본 적이 없어 기본적인 감정을 우울로 갖게 되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주는 안정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 행복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 때 행복한 기억도 없다. 그래서 살아가며 고단하고 힘들 때 떠올리면 힘이 되는 그런 장면이 없어 뿌리내리지 못한 나무가 된 듯한 느낌으로 살았다. 이리저리 휩쓸리며 살았다. 남들이 한 선택을 따라가면서, 흉내 내며 살았다. 어떤 선택을 해봐도 즐겁지 않았고 삶이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잃어버린 감정
잃어버린 감정
그 모든 상황의 밑바닥에는 읽히지 못한 감정이 있었다. 감정이라는 게 도대체 뭔지, 어떨 때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지에 대한 학습과정이 없었다. 내 감정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엄마였기 때문이다.엄마는 양육과정에서 내게 그런 것들을 경험시키지 않았다. 자신이 주는 것,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좋다고 생각하는 것만 제공했다. 뭐가 먹고 싶니? 어딜 가고 싶니? 뭘 갖고 싶니? 이런 질문들이 없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나는 닭고기가 먹고 싶어요. 닭고기가 먹고 싶니? 닭고기는 치킨과 백숙과 닭볶음탕과 조림이 있는데 그중에 어떤 게 먹고 싶니? 이런 과정이 없었다. 만약 내가 닭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면 엄마가 좋아하는 백숙이 준비되는 식이다.그래서 내가 싫다고 하면 수용되지가 않는다. 네가 원하는 건 틀렸어. 내 선택이 더 좋은 거야. 네가 뭘 알아? 가 이어지니까.그런 과정들이 가정 속의 장면에서 무수히 반복되다 보면 내 감정과 부모의 감정을 분리하기가 어려워진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다 보니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감정이 수용된 적이 없어 확신이 없는데 그녀는 그렇게 말한다. "네가 뭘 아니? 엄마가 해주는 대로 해. 다른 사람 말은 듣지도 마라, 사람들이 솔직하게 얘기하는 줄 아니? 다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지." 더 단단히, 쐐기를 박는 것이다.
그렇게 자라서 엄마와 똑같이 말하고 행동하는 남성을 만나게 되었다. 남편은 내게 늘 말했다. " 네가 혼자서 뭘 해? 너는 나 아니면 못 살아~" 결혼을 해서도 그렇게 살았다. 남편이나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면서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믿으며 죽음의 디데이를 정해놓고하루하루 삶을 죽여가며 살았다. 사십여 년동안 경험한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진 상호작용이 가스라이팅이라는 걸 마흔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우울증
< 우울증>
나는 전 생애적인 우울증을 가지고 있었다. 유년시절에도 언제나 우울했기 때문에 방황을 많이 했다. 학교는 잘 갔고 치마도 줄여 입지 않았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고,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지도 않았지만 혼자서 생각을 많이 했다. 산다는 게 뭔지에 대한 철학적인 생각들을 늘 했던 것 같다.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언제까지 살 것인가도 고민을 많이 했다.
즐거운 활동보다 죽음과 삶에 대한 고민이 더 많이 되었다. 그런 것들이 궁금해서 책을 많이 읽었고 그런 것들이 궁금해서 영화를 많이 봤다. 왠지 그런 곳들에 내가 궁금해하는 것들이 들어있을 것 같아서 그랬다. 살고 죽는 문제에 더 몰입했다는 건 그만큼 죽고 싶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내가 우울했다는 건 자라는 시절 내내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엄마와 함께 살았던 27년이라는 시간 동안 꾸준하고도 지속적으로 가스라이팅을 당했고 결혼 이후에도 대상만 바뀌었을 뿐 똑같은 방식이 이어졌다. 사람이 우울하고 그걸 가까운 사람에게 말했는데도 계속 무시를 당하면 무기력해진다. 그리고는 결국 그 우울이 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마음을 바꾸면, 내가 운동을 더 하면, 내가 기분전환을 하면, 내가 생각을 바꾸면 나아질 거란 가스라이팅이 이어지기 때문에 결국 우울의 원인도 내가 된다. 그들이 책임지지 않은 자기감정들로 내가 괴로워졌어도 내 탓이고, 내 기분도 내 탓이 된다. 모든 게 다 내 탓이 된다. 그러니 어떻게 되겠나. 나라는 존재가 무가치하게 느껴지고 결국 죽고 싶어 진다. 그게 바로 가스라이팅의 수순이다.
외상 후 성장
<외상 후 성장단계>
정신적 충격을 수반하는 사건을 경험한 후 심리적 외상을 받은 뒤 회복되는 단계가 있다. 회복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변화가 오는 단계를 말하는데 외상을 잘 치료하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극복하고 나면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타인에 대한 이타적인 마음과 공감의 깊이가 깊어진다. 외상 후 성장을 몇 번 경험하고 나면 외상을 가져다주는 다른 사건을 다시 접하게 되었을 때 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숨어있음을 알게 된다.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건들은 언제나 찾아올 수 있음을 알고 더 담담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때는 상처나 고통을 거부하는 마음이 아니라 수용하는 태도가 된다.
용기란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기보다 두려움을 견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상 후 성장단계를 경험하고 나면 더 단단해지고, 자신의 삶과 삶 속에서 만나는 타인들을 더 사랑하게 된다. 더 깊어진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 후에 외상 후 성장단계를 써 내려간 이유가 있다.상처받은 사람이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외상 후 성장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과거보다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이 낮아지기도 했고 개인적인 외부활동을 통해 정신과 선생님들의 이미지가 예전보다 좋아지기도 했지만 가스라이팅에 잠식된 사람이 병원을 찾아가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인생을 살아가며 부상이나 상처를 피할 수는 없다. 다쳤다면 치료받아야 한다.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마음 역시 몸을 치료하는 것처럼 치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치료> - 치료받을 곳을 선택하는 방법
1.전문가들의 관점은 모두 다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의사 선생님들은 두 파로 나뉜다. 두부 자르듯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뇌과학적인 관점에 더 중심을 두는 분들과 인문학적인 관점에 더 중심을 두는 분들로 나뉘는 것 같다. 뇌과학적 관점에 중심을 두는 분들은 약물로서 우울 증상을 개선시키면 된다고 볼 것이고, 인문학적 관점에 중심을 두는 분들은 환자의 우울 너머 무엇을 볼 것이다. 내가 경험한 병원은 생물학적 관점에 더 중심을 두는 의사 선생님들이 많았고 인문학적 관점으로 환자를 보는 선생님은 한 분이었다. 내 경험은 그랬다.
2. 심리상담이 반드시 필요하다.
약물치료가 필요하다면 병원을 찾아가는 게 필요하지만 약물치료보다 상담을 받고 싶다면 심리상담센터를 찾는 게 더 좋다. 병원은 내 마음을 털어놓기에 시간적 여유가 없다. 구조적으로 그렇다. 환자들이 모두 예약을 하고 찾아오긴 하지만 예약이 없이 찾아오는 분들도 있고 다양하고 더 심각한 질환을 가진 분들도 내원하기 때문에 마음을 편안히 털어놓기에 어려운 점이 있다.
아픈 마음을 상담해 주려면 의사 선생님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마음을 듣기에, 그 마음을 듣고 적절한 반응을 해 주기에 어려운 선생님들도 있다. 정신과 의사라고 해서 모든 환자의 마음을 다 들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심리상담센터 선택
상담센터의 시설을 보는 것보다는 어떤 상담자가 내담자를 기다리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만약 나처럼 엄마에 대한 강력한 분노와 우울이 있다면 엄마와 비슷한 연령대의 상담사님은 피하는 게 좋다. 진행이 어려워진다. 기본적으로 상담은 한 번 시작하면 3년 정도를 받아야 내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진행이 어려워지면 오래 지속하기가 힘들다. 내가 호감을 가질 수 있는 대상을 선택하는 것이 치료효과를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만약, 나는 엄마보다 아버지를 더 좋아했다면 아버지와 비슷한 연령대이거나 외모가 비슷한 분이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오랜 시간 상담을 지속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
상담가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뛰어난 상담가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와 맞는 상담가가 있다. 맞아야 오랜 시간 치료를 지속할 수 있고 변화의 확률도 높아진다. 다른 전문가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경험자인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심리상담은 굉장히 힘든 작업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떠올려야 하기도 하고 또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저편에 묻어두었던 것들이 올라오기도 한다. 상담가와의 관계가 편해야 그런 힘든 경험을 잘 견딜 수 있고 꾸준히 그런 작업들을 해 나갈 수 있다. 만약 남자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이 많다면 여성 상담가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또 나의 생활반경 안에 있는 센터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보통일주일에 한 번 혹은 두 번씩도 진행되기 때문에 생활반경에서 먼 센터는 다니기가 어렵다. 1,2년 다니고 말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까운 곳으로 다니는 것이 좋다. 대학 내에도 상담센터가 있는 걸로 안다. 비용도 저렴하고 학교 내에 있으니 접근성도 쉽다. 우울하다면 반드시 찾아가 상담받기를 권한다.
그럴 일은 극도로 드물겠지만 자기애적인 이슈를 가진 사람이 상담을 받기 위해 상담가를 정할 때 젊은 남성, 젊은 여성은 피하는 것이 좋다. 그들은 젊음을 우월이라 보므로 젊은 이들에 대해 질투를 하거나 과도하게 선망하기 때문에 상담을 오래 지속하는데 방해가 된다. 물론, 뛰어난 상담가라면 그 방해를 치료의 재료로 사용하겠지만 선택할 수 있다면 일부러 그런 조건의 치료자를 선택할 필요는 없다. 가장 좋은 치료자는 나와 맞는 치료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