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는 우리 부부의 사이에 끼어들어 삼각관계를 만들었다. 내가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요구했고 그런 요구들을 하는 그녀의 모습은 어디까지나 힘없는 노인이었다. 그녀는 예전처럼 언제나 피해자의 위치에서 나를 나쁜 사람 만들었다.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도 나빠졌다.
남편도 나에게 나쁘다고 했다. 나이 든 분이 안 바뀌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요구를 들어주는 척하라고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고 왜 자꾸 분란을 만드냐고 나를 비난했다. 살면 얼마나 사시겠냐고 하며 그녀와의 사이에 내가 애써 세워 놓은 경계를 허물어버렸다. 매번 그랬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본인이 자처해서 한 일이 힘들면 나를 비난했다. 마치 패륜을 저지르는 비윤리적인 사람처럼 취급했다. 엄마는 자신의 욕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남편을 이용했고 남편은 기꺼이 이용당해 주고 그로 인해 발생한 부정적인 감정으로 나를 비난했다. 무척 불쾌했다. 더 이상 이런 삼각관계 안에서 조종당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의 협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걸 받아들이고 그녀의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그녀는 남편에게 또다시 전화했다. 전화를 받은 남편은 나에게 전활 걸어 장모님이 무엇 때문에 전화를 하셨다고 전했다.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 나는 앞으로 엄마 전화를 받지 않을 거야. 당신도 받지 않아도 돼. 만약 당신 마음이 도저히 불편해서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면 받아. 그러나 그때 벌어지는 당신 안의 불쾌한 감정은 당신이 감당해야 해. 왜냐하면 당신이 전화받기를 선택했기 때문이야. 그건 당신 거야. 나는 당신한테 강요할 생각이 없고 당신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선택했다면 결과도 받아들여야 하겠지.
엄마는 전화를 계속 걸어왔지만 받지 않았고 어버이날 명절, 생신에도 찾아가지 않았다. 그렇게 남편은 초반에는 전화를 받더니 나중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내가 기꺼이 빠짐으로써 삼각관계는 깨졌다.
모든 삼각관계
모든 관계에서 삼각관계
친정엄마는 남편과 나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삼각관계를 만들었다. 자기+형제들+나, 혹은 자기+어릴 적 헤어진 아들+나, 이런 식이었다.
엄마에게는 돌 이전에 헤어진 아들이 있었다. 첫 번째 결혼의 이혼을 하면서 두고 나온 아들인데 찾기를 원해서 5년 전에 찾아드렸다. 그 관계에서도 삼각관계를 만들었다. 중년의 아들이 찾아와 만나고 또 그 아들이 보내준 선물이나 건네는 용돈에 대해 나를 개입시켰다. 멀리 사는 아들이 선물을 보내오면 나는 그 즉시, 그녀의 집에 아들이 보낸 선물이 닿자마자 가서 받아와야 했다. 내 사정이 어떻건 내 일정이 어떻건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만약 가지 않으면 성의가 없다는 비난이 이어진다. 걔는 그래도 너를 동생이랍시고 생각해 주는데, 너는 당장에 받으러 오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비난이 이어졌다.
또 비교도 이어진다. 그 아이는 자신이 키우지 않아도 잘 컸다며, 그런데 나는 직업도 변변치 않아 걱정이라면서 모든 것을 비교한다. 이때 아들은 절대적인 우월의 역할이고 나는 절대적인 열등의 역할이 주어진다. 나는 그 삼각관계에서도 철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분이 보내준 선물을 당장에 받으러 오라는 엄마의 말을 무시하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걸 몇 달간 반복했더니 결국 그녀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선물을 보내지 말라고 말했다.
그녀는 왜 아들에게 선물을 보내지 말라고 하고, 내가 그 선물을 받으러 당장 오기를 그토록 바랬을까? 나는 그것이 죄책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아들을 놓고 이혼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고 평소에도 그에 대해 여러 번 말했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선물을 보내왔다. 그녀에게 그 선물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죄책감이었을 것이다. 그런 죄책감을 스스로 다루질 못하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해결해 주기 바랐고 그 해결이란, 죄책감을 자신의 눈앞에서 치우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를 불러 빨리 그것(죄책감)을 치우고자 했으나 내가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넌 성의가 없다느니, 그 아이는 너를 생각하는데 너는 인정머리가 없다느니 같은 말들은 사실 자기 자신에 대한 말이었을 수 있다. 난 성의가 없어, 난 인정머리가 없어. 내가 키우지도 않은 아들이 선물을 보내주었는데 기분이 안 좋은 게 말이 되는 거야? 내가 키우지도 않은 아들이 저렇게 멋지게 커서 나타났는데 왜 딸은 그걸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는 거야?
나는 그걸 알았고, 삼각관계에서 철수했다. 내가 빠짐으로써 그녀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들을 하나씩 감당해 나가게 되었다.
또 삼각관계
가족치료 이론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보웬의 다세대 가족치료의 이론에는 <삼각관계>가 있다. 삼각관계는 가족 내 불안과 긴장을 해소하기 위한 3인의 역동체계다. 이인관계에서 벌어지는 불안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삼각관계가 이루어지고 분화 수준이 낮을수록 삼각관계를 만들려는 노력이 강해진다. 예를 들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투고 아이에게 " 아버지한테 식사하시라고 해라."라고 말을 전하게 한다든가, 부부의 관계 안에 아이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아이를 붙들고 남편에 대한 욕을 한다든가, 부부관계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하소연을 하는 것도 삼각관계에 해당한다.
다세대 가족치료의 치료목표는 다세대에 걸쳐 삼각관계를 이루고 있는 사람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부부관계에 아이가 들어와 있다면 아이를 해방하고 치료자가 그 자리에 들어감으로써 갈등을 조절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찾게 된다. 그것을 치료적 삼각관계라고 부른다. 가족 내에 삼각관계가 지속된다면 갈등은 해소되지 않고 역기능적인 방법으로 한 사람에게만 부담이 가중된다. 그런 관계에서 나는 철수했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삼각관계를 만든다. 자기 내면의 자기에 대한 상이 우월과 열등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자녀를 대할 때도 두 아이가 있다면 한 아이에게는 우월의 역할을, 한 아이에게는 열등의 역할을 맡기고 그렇게 대한다. 그럼으로써 그 부모가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열등의 역할을 맡은 아이를 통제하고 조종할 수 있게 된다. 열등의 역할을 맡게 된 아이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지 않기 위해, 열등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나르시스트 부모가 진짜 원하는 것은 자기 안의 열등감의 통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