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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리는 민들레 Jul 17. 2024

5. 대화는 냉정하고 건조하게 - 통보하기

나르시스트와 살아야 한다면



기능을 해내지 않을 거라면


기능을 해내지 않을 거라면


결혼생활이 십오 년이 넘을 무렵 나는 남편에게 헤어지자고 했다. 무수히 많은 날들무수히 많은 말들로 내 심리적 고통을 토로해 왔는데 그는 그것을 전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부부생활이 대화와 타협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헤어져야 하지 않겠나 싶어 한 술집에서 사케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했다.


/ 결혼생활을 유지해 나간다는 건, 남편이 남편의 역할을 하고 아내인 내가 나의 역할을 지장 없이 해 나갈 때 유지가 되는 것 아니겠어? 그런데 만약,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이 결혼 유지가 될까? 나는 당신이 남편으로서 당신의 역할을 하기 바라. 지금 말하는 남편의 역할이란, 단순히 돈을 가져다주는 역할은 아니야. 아내의 마음이 고통스러울 때, 가족들의 마음이 괴로울 때, 당신이 해야 하는 역할도 있어. 당신 스스로가 당신 자신을 ATM 취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신이 역할을 못하겠다면 이혼하는 방법 밖엔 없어.


남편은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고 나는 상담을 권유했다. 남편은 병원에서 심리검사를 해보겠다고 했고 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종합심리검사를 했다. 그 결과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바로 <자아도취적>이라는 말이었다. 남편의 심리 역시 나르시스트적인 면모가 있었다. 병원에 가서 생전 처음 보는 의사 선생님에게 남편과의 관계에서 그동안 겪었던 고통을 털어놓는데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그 선생님은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울지 마시라. 고 했다. 검사 결과를 확인한 이후로도 남편은 병원에 상담을 다녔는데 그다지 동기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결국 그만 오시라. 고 했다.








평정


평정


나는 다시 권유하지 않았다. 그와 나 사이에 시간과 공간을 더 두었다. 그리고 그의 소통방식, 비난 멸시 무시가 이어지면 무시하는 방법을 사용하거나 때로는 싸우기도 했다. 고성이 날아올 때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리고 비교적 차분한 상태에서는 나도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과거에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남편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감정이 격해질 때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도저히 대화가 진행되지 않았다. 남편은 감정적인 것을 열등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 감정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나는 우울증에 걸려 있었다. 그래서 치료를 받았고 켜켜이 쌓여있던 감정을 3년 동안 풀어내야 했다. 그 작업을 다 하고 나자 상황을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혼을 말할 때조차도 아주 이성적이고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싸우거나 내 주장을 해야 될 때도 대개의 경우 차분하게 주장을 펼쳤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내가 울고 불고 큰 소리를 하며 말할 때보다 차분하게 이야기할 때 그가 내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그러지 않으니 도리어 남편이 그런 모습을 더 보이기도 했다. 그것도 이상했다. 언제나 냉정한 모습으로 칼 같은 대화를 하던 사람이었는데 감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어쩌면, 내가 그의 감정을 그동안 대신 느꼈던 것이 아니었을.

이런 행동들의 이면에는 여기서 조금만 더 넘치면 언제든 이혼이라는 마음의 준비가 이미 있었다. 






세가지 이유


그의 세 가지 이유


남편이 나를 대하는 방식에 무척 기분이 나빴었다. 그때는 그가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가 진짜 무시한 것은 나라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자신이었다. 그의 내면에 아내와 가족은 없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고 타당했다. 자기 영역이 엄청 큰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없는 것이다. 그의 모든 행동과 말, 생각, 가치관에는 매우 빈곤하고 빈약한 자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장모와 아내와의 사이에서 그가 렇게 행동한 이유가 있었다.


 이유, 아내를 곤란하게 하는 장모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므로 아내를 더 용이하게 통제할 수 있다.

그는 나를 통제하기 위해 장모를 이용했을 수 있다. 그래서 무리한 요구를 하는 장모의 피해자가 되어 내가 죄책감을 느끼길 원했을 수 있다.


째 이유, 자기 내면의 이유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본인 내면의 이유가 있다. 안전한 환경에서 자기 부모에게 거절해 본 경험이 없다는 점, 그리고 그 거절이 수용되거나 조율되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거절하는 것이 불편했을 것이다. 그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차차 이야기할 것이다.


세 번째 이유, 높은 도덕적

 성장환경은 무척 엄격했다. 양육이 엄격하면 도덕적 기준이 높게 형성이 된다. 그의 성장 환경은 폭력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적인 보살핌이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 인정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3자인 내가 지금 그의 원가정을 보았을 때 예상이 되는 부분들이 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냉정


나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냉정



그의 행동의 배경에는 지금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도 있지만 성장과정에서 비롯된 것도 있었다. 나는 그걸 폭넓게 살폈고 그 일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일이었다. 그의 배경에 대해 여러 가지를 통찰하고 숙고해야만 나를 보호할 수 있었다. 단순히 감정을 호소하는 말로는 절대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냉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의 자기도취적인 면을 도리어 이용할 수도 있었다. 너의 불쾌함의 모든 이유가 나인가? 내가 너에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아주 쉽게 수치심을 느낄 것이기에 그런 질문을 품고 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건강하지 못한 자기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할 때는 낮은 목소리로 간단하게 말해야 한다. 꼭 필요한 핵심적인 말만 투척. 해야 한다. 대화란 상대방이 이야기를 할 때 기다리고 상대방도 내가 이야기를 할 때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나르시시즘적인 사람과의 대화는 그게 가능하지 않다. 내가 이야기를 할 때 자기는 기다리지 않으면서 기가 이야기할 때 내가 기다려주기를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하는 말이 끝나길 기다릴 필요가 없다. 대화라는 것이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간단히 투척(던지고) 자리를 뜬다. 뜨지 않으면 자기 합리화, 비난, 경멸, 멸시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말은 들을 필요 없다. 그건 그의 사정이지 내가 그 이유까지 이해하고 공감해야 하나? 그럴 필요 없다. 그도 나를 공감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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