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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리는 민들레 Jul 25. 2024

11. 감정 쓰레기통인가 존중받는 사람인가?-대상

나르시스트와 살아야 한다면



감정쓰레기통


감정쓰레기통



감정쓰레기통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타인의 부정적인 감정을 아무 때나 받아주는 사람을 가리키거나, 자기의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특정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버리는 것이다.

어떻게 버린다는 걸까? 감정이란 눈에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것인데 버리는지를 어떻게 알까?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상황 1> 평상시에 연락이 별로 없던 친구가 남자친구랑 헤어지기만 하면 전화해서 외로움 고독감 슬픔을 토로한다. 얼마 후 그 친구에게 다시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기면 연락이 끊긴다.


<상황 2> 엄마가 딸을 볼 때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억울함과 회한을 하소연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남편, 자신을 노예취급하는 시부모, 자신을 윗사람으로 대해주지 않는 시동생들까지 너무 밉고 속상하고 화가 나서 그 감정을 딸 혹은 아들에게 하소연한다.


상황 1에서 친구는 자신의 감정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평상시에  자주 연락하지 않던 친구에게 오랜만에 전화해서 고독감, 외로움, 슬픔을 토로했다. 상황 1에서의 감정 쓰레기통은 감정을 들어준 친구다.


상황 2에서 감정 쓰레기통은 누구일까? 엄마의 하소연을 듣는 딸이다. 딸은 "그러니까 엄마 그 일은 앞으로 그렇게 하지 마, 왜 사서 고생을 해"라고 말을 해줘도 엄마는 자신이 과거에 해 왔던 방식을 계속 선택하면서 억울함과 분노를 느끼고 또다시 딸에게 전화를 걸어 그건 그래서 억울하고 저건 저래서 화가 난다며 하소연을 한다. 이때 딸은 화가 난다. 도대체 자기가 이야기해 준 방법은 시도해보지도 않으면서 왜 자꾸 힘들다고 하는 건가.


친정엄마는 매번 나에게 자신의 형제들에 대한 욕을 하고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희생했는지 말하며 억울해하고 비통해했다. 그들과의 관계가 그렇게 힘들면 거리를 두면 될 텐데도 그들 옆에 붙어서 분리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언제나 나를 내세웠다. 거에 삼촌네 집에 전세금을 내고 들어와서 살면 어떻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엄마는 내게 물었고 나는 당연히 싫다고 했다. 그동안의 행태로 보아 그들이 전세금을 돌려줄지에 대한 신뢰가 없었기 때문인데 엄마는 그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 들레가 들어가기 싫대.."


그래서 나는 나쁜 년이 되었다.








쓰레기통에게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사람은 없다.



쓰레기통에게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리는 순간마다 쓰레기통에게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가지지 않듯이 그들도 자신의 감정을 버릴 때 그런 마음을 갖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을 감정쓰레기통 취급을 할 때의 특징이 있다. 미안함과 고마움의 부재. 그들은 언제나 자기의 고통, 힘듦, 희생에만 점이 맞춰져 있어 자기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타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한다.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를 대하고 <대해> 진다.  여기서의 대해진다는 것은 단순한 대면의 의미가 아니다. 존중으로 대해지는가, 존중받지 못함으로 대해지는가는 다르다. 쓰레기통이 뭔가, 더럽고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리는 곳 아닌가. 감정쓰레기통의 의미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감정을 버린다는 의미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을 감정쓰레기통으로 <대한> 다는 것은 그 사람을 존중할 때에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는 좋은 것만 주려고 한다. 내가 좋다고 준 것이 상대방에게 혹시 나쁘진 않을까 걱정하면서 준다. 주고도 물어본다. 그거 사용하기 괜찮아? 어때? 그러나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마음에서는 내가 준 것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신경 쓰지도 관심도 없다. 내 마음이 더 중요하다.


나를 존중으로 대해주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고맙고 미안해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한 이야기를 기억하려고 할 것이다. 또 차후에 그때 네가 해준 이야기가 참 도움이 되었어. 두고두고 고마워..라고 할 것이다. 나를 존중으로 대해주는 사람이라면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이 어떤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그러나 나를 쓰레기통으로 대하는 사람이라면 내 마음에는 관심도 없을 것이며 내가 해준 조언이나 경청에 대한 고마움도 전혀 없을 것이다. 그들의 주된 관심은 그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데에만 맞춰져 있 때문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연락을 해도 받아준 친구에 대한 고마움이 없는 것이고, 자신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게 어려울 텐데도 매번 들어주는 딸에 대한 안함이나 고마움은 없는 것이다.








내 안에 꽃을 담자


그들의 쓰레기 말고 꽃을 담자.



상대방에게 내가 쓰레기통으로 대해진다면 쓰레기통이 되어주어야 할까? 만약 그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면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그들의 쓰레기를 받아주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까? 살아가다 보면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그 자신만의 영역이 있다. 스스로 해내야만 하는 결정이나 선택이 있다는 말이다. 스스로 그런 것들을 기꺼이 짊어지지 않는다면 천 개 만개의 쓰레기를 타인에게 버린다 한들 과연 가벼워질 수 있을까?


그건 그들을 돕는 것도 아니고 나를 돕는 것도 아니다.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는 행위다. 그들의 삶은 그들이 알아서 하도록 두고, 나는 내 삶만 책임지면 된다. 나를 사랑해 주고 아껴주고 존중하는 사람은 나를 쓰레기통 취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쓰레기통이 되어주지 않았다고 원망하지도 않는다. 가 아무리 들어주어도 그 사람이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바꾸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괴로움은 개선되지 않는다.


쓰레기통이 되지 말고 꽃을 담는 화병이 되자. 내 안에 아름다운 것만 담아주는 사람을 만나고 그런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자. 만약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면 스스로 내 안에 아름다운 것들을 담자. 인터넷만 열어보아도 위로하고 응원하는 좋은 말들이 차고 넘친다. (내 브런치북 [마음의 발견]에도 아름다운 말들이 가득하다) 자기 안에 타인의 쓰레기 말고 아름다운 마음들을 많이 많이 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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