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한 아이가 태어나 성장하고 독립할 때까지 20년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스무 살이면 독립을 해야 한다고 하는 관점들이 있었지만 요즘은 독립의 시기가 늦춰졌다.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하기 때문이고 대학에 진학하고 직장에 취업하고 자리 잡기까지 과거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독립의 시기도 늦춰졌다. 그 배경에는 주거비용이 높아진 것이 크게 한 몫을 한다. 여유가 되는 가정에서는 등록금과 용돈까지 지원을 해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가정이라면 등록금만 지원을 해 주고 용돈은 벌어서 쓰기도 한다. 그 정도면 형편이 좋은 편이다.
그럴 수 없다면 학자금 대출을 받는다.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대학 공부를 마치고 취직을 하면 빌린 학자금 대출금을 갚아나가야 한다. 월급을 받아 대출금을 갚아나가다 보면 독립에 필요한 주거비용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출산까지 한다는 건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다.
한 사람이 신생아, 유아, 아동, 청소년, 성인, 중년으로 가기까지는 정말 많은 단계들을 거치게 되고 많은 경험들을 한다. 살아가며 힘이 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맞이할 때 아이에게 힘이 되는 대상은 친구, 선배, 선생님, 지인 등 다양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 스스로 자기 삶을 잘 살아나가게 되면 부모가 전혀 필요하지 않을까? 부모라는 존재는 아이가 자기 삶에서 잘 기능하게 되면 필요가 없어지는 걸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이가 독립하면 부모의 역할은 끝일까?마치 자녀가 독립을 하면 이후부터는그동안 키워준 것에 대한 은혜를 되돌려 받아야 하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어른들을 본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그런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아이는 부모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하고, 결혼해서는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자녀의 역할을 해야 하나? 일주일에 한 번씩 안부전화를 해야 하고, 명절이면 절대 친정 먼저 가면 안 되고 시댁부터 와야 하고, 며느리 쪽에서 늘 희생해야 하고, 아들은 육아휴직을 쓰면 안 되고 등등... 마치 그동안은 부모를 해주었으니 이제는 성과급을 받아야겠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아이가 성인이 되었다고 더이상 부모가 아닌가?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경험을 들려주는 사람
한 번 부모였던 사람은 영원히 부모다.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부모인 것인데도 마치 부모의 기간은 20년, 부모가 성과급을 받는 기간은 80년인 것만 같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 독립하는 순간 부모는 자녀의 자녀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왜 그러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부모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어린 시절이 없었기 때문에 충분히 수용되고 기다려진 경험이 없기 때문에 억눌러 두었던 어린 시절이 노년기로 접어들며 자녀에게 발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 어린애가 된다. 는 단순한 인지능력의 저하 때문이 아니라 내면적 성장과 성숙이 멈추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노년기를 보내는 것이 특히 더 힘들어진다. 노년기에는 체력도 마음도 사회적인 지위도 전과 같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가졌던 우월감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현실적으로 힘이 빠지고 늙어가는 것이 자신의 눈에도 보이기 때문인데 자신이 나이가 들었고 취약한 점이 생겼다는 걸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타인을 괴롭히고 멸시하고 비난하는 양상이 젊었을 때보다 더 심해진다. 그리고 자녀를 통제하려는 양상도 더 심해진다. 실제로 나의 친정 엄마는 나이가 들면서 내 외모에 대해서 더 많이 지적하기 시작했고 젊을 때보다 나를 더 많이 통제하고 싶어 했다.
부모가 되었다면 아이가 성인이 되어 독립을 해서 나갔어도 부모이다. 부모는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는 개인이면서도 부모여야 한다. 그래서 가끔 성인이 된 아이가 찾아와 엄마, 아빠는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어땠어요? 엄마 아빠는 첫 출근했을 때 어땠어요? 처음 집을 샀을 때 어땠어요? 건강이 악화되었을 때는 어땠어요? 물으면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 지지와 함께. 그게 부모다. 아이의 모든 순간에 함께 있되 함께 있지 않는 것. 그런 것이 부모다.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경험을 들려주는 사람이 부모인 것이다. 방법은 아이의 몫으로 남겨두는 지혜와 여유를 가져야만 하는 것이 부모다.
나의 엄마는 내가 어릴 때는 자신의 일부로 보았고, 내가 성인이 되어 물리적으로 독립하고 난 후에는 성과급으로 대했다. 자, 이제 내 인생은 네가 책임져야해.로 대했다. 집을 사줘야 했고, 냉장고를, 세탁기를, TV를, 가스레인지를 사줘야 했다. 집 빼고 다 사드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을 사주지 않은 데 대한 분노를 들어야 했다.내가 도움을 요청할 때는 스스로 해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내 부모였지만 부모였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자기였을 뿐이다.
착취적인 부모를 대하는 방법
착취적인 부모를 대하는 방법
부모와 최대한 빨리 멀어져야 한다. 그리고 도움을 요청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도움받을 기대도 하지 말고 도움줄 생각도 하지 말자. 부모는 나보다 더 오래 살았다. 나보다 삶의 지혜와 연륜이 더 풍부하다. 그들이 그걸 사용하면서 살아가도록 놔두자. 그리고 꼭 도움을 주어야 할 일이 있다면 빨리 치고 빠지는 전략을 사용하자. 꼭 필요한 것만 도와주고 바쁜 척하고 내 삶으로 돌아오자.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할 때는 단호하고 간단하게 해야 한다. 안됩니다. 못합니다. 바빠서요. 한 마디면 된다. 주저리주저리 거절하고 말을 많이 하면 그들은 반드시 틈새를 공략할 것이며 당신의 약점을 파고들 것이다. 당신 자신보다 그들이 당신의 약점을 더 잘 안다. 그러므로 틈을 주어서는 안 된다. 당연히 그들은 단 한 번으로 당신의 거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말은 들어본 적도 없는 것처럼 또다시 요구할 것이고 그것을 반복할 것이다. 그러더라도 절대 흔들리지 말자. 한 번 아니라고 생각한 것에 대해 거절했다면 지속적으로 그 입장을 유지하자. 전에도 계속 싫다고 했는데 왜 또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거냐고 화낼 필요도 없다. 차라리 그들의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마음이 더 편하다.
부모에게 시간과 노력을 쓰는 대신 나 자신에게 좋은 추억을 많이 선물했으면 좋겠다. 뿐만 아니라 내가 아플 때 사용할 돈을 미리 마련해 두고 보험도 들어두고 비상시 연락할 사람도 미리 탐색해 놓자. 부모에게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는 걸 언제나 상기하고 스스로 대비하자. 또 내 월급이나 그동안 모은 돈의 금액을 절대 말하지 말자. 그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건 말할 것도 없다.
더불어 내 주변의 좋은 사람들을 많이 사귀고 그들과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그들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하고 만들어가는 것이 내가 어렵고 힘들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더 큰 힘이 된다. 물론 좋은 사람들이라는 전제가 꼭 필요하다. 대가 없이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단단해져서 흔들리지 않는 것이 다. 내 감정에 확신을 갖는 게 중요하다. 부모를 대할 때의 내 마음이 불편하고 괴롭다면 당신의 마음이 맞는 것이다. 내 안에 나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진짜 내 목소리가 아니라 그들이 심어둔 목소리일 확률이 더 크다. 나를 비난하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린다면 정신과 치료든 심리치료든 일단 받자. 그래서 정서적인 근육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처음부터 무림고수는 없다. 어딘가에서 큰 상처를 입고 대나무숲에서 열심히 무술을 단련하는 사람이 결국 고수가 되어 나타난다. 그럴 때는 꼭 세상 일에는 관심도 없는 스승에게 배운다. 왜 그러는 것일까?
상처를 치료하려면 안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이비 스승에게 치료받으라는 건 아니다.) 정당한 자격을 갖춘 치료전문가에게 치료도 받고 기술도 연마하자. 그래서힘과 지혜를 갖춘 무림 고수가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