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스트 부모나 배우자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식은 당신의 감정을 무시하는 방식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내 것인데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오랜 시간 들으면서 살다 보면 '내가 이상한 건가?'라고 생각하게 된다. 남이라면 가끔 만나니까 그러려니 하겠지만 가까운 관계,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의구심을 갖기가 힘들다. 그것이 부모라면 말할 것도 없고 배우자라도 마찬가지다.
친정엄마는 내가 자라는 내내 나의 감정이 잘못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이십 년을 살고 나니 내 감정이 뭔지를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느끼는 내 감정이 내 것인지, 엄마가 말하는 감정이 내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가장 대표적으로 외모적인 부분에서 엄마는 계속 지적을 하고 이상하다고 해왔기 때문에 나는 내가 정말로 이상하게 생긴 줄 알았다.
남편은 내가 감정을 얘기하면 네가 예민한 거라고, 아무도 안 그런다고, 너만 그러는 거라고 했다. 전혀 내 감정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내 감정이 이상한 거라고 했다. 함께 있고 싶거나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감정들을 용기 내어 이야기하면 이상한 거라고 했다. 어떤 부부가 그러고 사냐고 하면서 의존적이라고 했다. 나의 어떤 감정도 수용되지 않았다.
나르시즘적인 부모는 자녀를 통제의 대상으로 삼는다. 자녀가 한 명이라면 더하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자녀에게 있다고 여기고 그런 면을 가진 자녀를 통제 대상으로 삼는데 그런 통제를 용이하게 하는 것이 불안과 공포다. 자녀의 내면에 세상은 불신이 가득한 곳이라는 공포를 심고 그럼으로써 통제를 용이하게 만든다.
나르시즘적인 배우자 역시 배우자를 통제의 대상으로 삼는다. 상대방의 감정을 전혀 수용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강요한다. 상대방의 감정을 지속적으로 비난하고 거부하고 평가함으로써 감정에 대한 확신을 없앤다. 그것이 오래 반복되면 배우자는 '내 감정이 이상한가?'라는 자기감정에 대한 의구심이 생긴다.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가스라이팅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가스라이팅
이런 일들이, 가장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에서 생겨난다.
부모에게서, 배우자에게서 오랜 시간 이런 일들을 경험하면 어떻게 될까? 나는 죽고 싶었다. 어떻게 죽을까 고민하면서 살았다.더 경탄스러운 일은 내가 죽고싶어하는 것보다, 내가 죽고 싶어 하는지를 전혀 모르는 그들의 태도였다.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고,누군가를 자살충동이 들 정도로 괴롭히고 있는지도 모르는 그들의 당당한 얼굴, 나는 선량한 피해자라고 서스름 없이 말하는 그들의 입장이 내 감정과는 너무도 괴리되어 있는 것이고통스러웠다.
내가 경험하는 감정과 내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이 너무나 큰 차이가 나니 어떤 것이 진실이고 사실인지 혼란스러웠다. 내가 아무리 괴롭다고 호소하고 소리 지르고 악을 써도 그들은 전혀 나를 감안하지도, 배려하지도, 한 번쯤 생각해보지도않았다. 계속해서 자신들의 감정을 강요하고 나를 통제하려고만 했을 뿐이었다.
나도 편하게 살자.
내 감정 신뢰하기-화가 나는 게 더 건강한 것이다.
그들의 발작버튼은 바로 경계설정이다. 내가 내 목소리를 내고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행동할 때, 그들은 거의 발작을 할 것이다. 비난, 경멸, 혐오, 멸시, 분노가 마구 날아올 것이다. 그들의 반응을 보면 그들이 내 경계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세워야만 하는 것이 경계다.
그들이 나의 경계를 존중하지 않고 마구 넘었던 것은 그들 내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내 문제이기도 하다.
경계설정을 하고 지켜나가지 못했던 내 실수이기도 한 것이다.
경계설정의 기초는 내 감정 신뢰하기다. 내가 화가 난다거나 슬프다거나 괴롭다면 나한테는 그게 맞는 것이다. 화가 나는데 화가 나지 말아야지 생각하는 건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부인하는 것이다.나르시스트 옆에 오래 있었던 사람은 자기감정을 습관적으로 부인하게 된다. 감정을 계속 비난받았기 때문인데 그건 그들이 편한 방식이지 나에게 좋은 방식은 결코 아니다.
나에게 좋은 방식을 쓰자. 그들도 자기 편할 대로 사는데 나는 왜 그러면 안 되나? 나도 나 편한 방식을 선택하면 된다. 내 감정을 존중하고 그들의 방식을 무시해 보자.얼마나 편하겠나. 그동안 내 감정 무시하랴 그들의 감정 보살피랴 힘들지 않았나.
나를 첫 번째로 존중해 보자. 나를 존중하는 게 습관이 되면 그들이 나에게 시전하는 무례함에 대해 화가 난다.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을 때는 그들이 그러는 게 슬프다. 화가 나는 건 너무나 지극히 정상이다. 그걸 의심하지 말자. 다시 말하지만 당신의 감정은 언제나 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