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촉법소년은 폐지되어야 한다.
오전만 수업하고 마친 토요일 오후,,, 경태라는 친구가 다른 학교 아이와 국민학교 운동장에 가서 한판 붙기로 했단다.
결투라니,,, 정말 흥미롭고 재밌는 일이다.
둘은 국민학교 동창인데, 왜 싸우기로 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싸우는 데 이유가 뭐가 중요한가?! 그냥 둘의 싸움을 구경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재밌을 것 같았다.
어차피 중학생들 싸움은 개싸움이라서 뒤엉켜서 멱살 잡아서 밀면서 옷 늘어나고 머리카락 잡아서 뜯는 싸움이 아닐까 하고 구경하러 갔던 싸움이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둘은 서로 견제를 하며 서로 눈치를 보며 둥근 게 원을 그리면서 돌았다. 장군의 아들이라는 영화에서 싸우는 것처럼 서로를 견제하며 빙빙 도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다.
그러다가 싸움이 지루해질 때쯤,,, 경태가 "잠깐!"이라고 말했다. 싸우는데 잠깐이라니,,, 낭만파들인가,,,??
"잠깐만! 저 손에 쥔 거 뭔데?"라고 말했다. 그러자 상대편 아이의 주먹을 보니 라이터를 쥐고 있는 게 아닌가?? 경태가 "빼라"라고 하자 상대편 아이는 손목을 다쳐서 쥐고 있는 거라는 말도 안 되는 대답을 했다.
우리 친구들은 다들 그게 주먹을 더 단단하게 해 준다는 걸 알고 있는데, 무슨 개소릴 하나 싶었다. 아무튼 주먹에 쥐고 있던 라이터를 빼고, 그 둘은 다시 원을 그리며 빙빙 돌았다. 잔발로 앞으로 살짝 가려고 하면 흠칫하면서 피하고,, 서로 견제를 하면서 계속 원을 그리며 돌았다.
그리더니 서로 발차기하면 피하고 주먹을 날리면 피하고 그렇게 싸웠다. 둘이 중학생 싸움답게 뒤엉켜서 싸우지 않고, 그야말로 타격기만으로 싸웠다. 근데 서로 제대로 타격은 안 했다. 영화처럼 빙빙 돌면서 싸웠지만 솔직히 재미없었다. 그렇게 서로가 제대로 안 싸우고 계속 견제하고 피하고만 하자 싸움을 잘하는 한 친구가 나와서 한마디 했다.
"느그 둘이 별로 싸울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고마해라"라고,,,
그러더니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싸움이 끝났다. 그리고는 둘이 멋있는 척 손바닥으로 둘이 한번 짝! 하면서 낮은 하이파이브를 하고 싸움은 끝났다. 토요일 오후 신나는 싸움 구경을 기대했던 나는 둘이 원만 그리는 걸 보다가 싱겁게 끝나버렸다.
그렇게 아쉬운 싸움 구경이 끝나고 친구들은 다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누가 먼저 발걸음을 옮겼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공설운동장 쪽으로 갔다.
공설운동장을 막 지나가고 있는데, 친구 한 명이 갑자기 저쪽에 있는 중2짜리 아이가 우리를 쳐다봤다고 한다. 그 중2짜리 아이를 난 보지도 못했고 다른 친구랑 이야기하느라 별로 신경도 안 썼다.
그러더니 내 친구 중 하나가 그 중2짜리를 불렀다. 친구는 중2 아이에게 "마! 뭐 쳐다보노?"라고 말했다. 중2짜리 아이는 우리들이 한 학년 높고 숫자가 훨씬 많았지만 눈빛은 계속 째려봤다. 그래서 친구는 중2짜리 아이의 머리를 때렸다, 맞아도 전혀 기가 죽지 않고 여전히 내 친구를 쳐다봤다. 친구는 욕과 함께 중2짜리 아이를 몇 대 더 때렸다. 그러다니 중2짜리 아이는 우리에게 말했다. "다이 깨께요!"(1대1로 한판 싸우겠다는 말)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우리 중에 아무도 그 아이에게 헛소리하지 말라며 만류하는 애는 없었다. 아무튼 얼떨결에 둘은 다이다이를 깨게(일대일로 싸우게) 되었다.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골목으로 우리는 이동했다, 중2짜리의 쫄짜(부하)로 보이는 아이들 몇몇이 따라왔다.
내 친구는 골목으로 가자마자 그 아이를 때릴 것처럼 겁을 줬다. 하지만 중2짜리 아이는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저 골목 뒤에서 덩치가 큰 사람이 한 명 맥주병을 들고 나타났다. 떡 벌어진 어깨를 보니 고등학생 같았다. 그러더니 한마디 했다. "내 친구한테 손대는 새끼들은 다 대가리 깨 삔다"라고,,,
순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중학생 싸움에 병이라니,,, 맥주병으로 위협을 한다는 건 '경찰청 사람들'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범죄자들이 주점에서 술 먹다가 도망갈 때 주로 맥주병을 들고 경찰에게 위협하는 건 봤는데, 실제로 그런 모습은 처음 봤다.
무서웠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중2짜리 아이는 갑자기 티셔츠를 벗었다. 그러자 대각선으로 흉기에 그인듯한 상처가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포효했다.
중2짜리 아이는 갑자기 기가 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친구 몸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한번 쳐보라고 했다. 당연히 뒤에서 병을 들고 있는 사람 때문에 못 때렸다. 전세가 뒤바뀌었다. 갑자기 중2짜리 아이는 갑자기 점프를 해서 내 친구 코에 난다리를 꽂았다.(머리로 박았다) 그 순간 내 친구는 갑자기 코피를 흘리면서 정신을 못 차렸다. 그러더니 중2짜리와 내 친구 둘이서 싸우기 시작했다. 물론 내 친구가 중3이라 싸움은 더 잘하지만 한번 기세가 꺾이니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 나도 그렇고 내 다른 친구들도 그렇게 순간 모두들 당황해서 같이 싸워서 줘 패지를 못하고 그냥 보기만 했다. 그러자 내 친구는 난다를 맞았던 것 때문인지 정신을 못 차리며 다른 골목으로 도망갔다. 그러자 중2짜리 패거리들이 그 골목으로 따라갔는데, 우리 친구들은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 그러자 한 친구가 소리쳤다. "다 빨리 내려온나!" 순간 나는 정신을 차리고 다른 골목 쪽으로 내려갔다. 중2짜리 애들은 맥주병이랑 보루꾸를 들고 내 친구를 공격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걸 급하게 말렸는데, 이미 맥주병으로 한 대 맞았었던 건지 이마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 비참했다. 한 학년 아래의 아이들에게 이렇게 당하다니,,,
어찌 되었든 간에 친구를 데리고 빨리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한다. 굴욕적이기는 일단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중3이라 어떻게 처리할 줄 몰랐던 우리는 피를 철철 흘리는 친구를 데리고 친구네 집으로 갔다. 마침, 친구 아버지가 집에 계셨다. 친구 아버지는 그렇게 놀라지 않으셨는지 아니면 침착한 척 하신지 모르겠는데, 일단 우리에게 병원에 데리고 가라고 했다. 그래서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의사는 흉터가 안 남게 하려면 큰 병원에 가서 꿰매야 된다고 말했다. 일단 의사는 응급조치를 했고 우리는 친구 아버지에게 연락을 했다. 친구 아버지는 친구를 병원에 데리고 가셨다.
정말 부끄러운 싸움이 끝났다. 싸움도 졌고, 아무것도 못했다. 또 하나 부끄러운 건 어떻게 보면 시비는 우리가 걸었는데 당했다는 거다. 그리고 친구는 어쨌든 다쳤기 때문에 경찰 조사도 받았다. 보상도 받아야 한다.
경찰이 개입된 것도, 친구가 병원에 입원한 것도, 먼저 시비를 걸었다는 것도, 그리고 당했다는 것도, 합의를 해서 합의금을 받아야 되는 것도,,,, 다 쪽팔리는 것 천지였다.
그런데 하나의 반전이 일어났다. 맥주병을 들고 우리에게 위협하고 친구 머리를 맥주병으로 찍은 사람은 사실 고등학생이 아니라 중2 13세의 촉법소년이었다. 어차피 그 아이는 합의를 안 해도 처벌을 안 받는단다.
그래서 그 13세 촉법소년은 100만 원으로 병원비 포함해서 모든 걸 정리했다고 한다.
이 일이 학교에 알려져서 나는 선생님의 배려(?)로 생활기록부에 기록이 남지는 않지만 처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