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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디몬 Jun 10. 2020

거리의 시인들-빙

5화 돈 있냐? 없어요. 너 까불래? 아니요. 맞을래? 싫어요.

 1996년은 아직 IMF가 오지 않았어서 아직 경제가 괜찮았다. 그래서 그런지 거리에는 소위 삥을 뜯는 무시무시한 형들이 많았다.


 하루는 엄마가 시내에 나오라고 해서 시내에 가고 있는데 갑자기 본드 한 것처럼 '눈이 반쯤 풀린 형'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친한 척 해라"라는 멘트와 함께 택시비 하게 오천 원을 삥을 뜯는 것이 아닌가. 나랑 아는 사이도 아닌데 어깨동무를 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아는 동생인척 하는 수법이다. 이 당시의 택시비 기본요금은 고작해야 천삼백 원 정돈데 어디까지 가길래 오천이나 달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이날 주머니엔 돈이 제법 많았다. 대략 오만 원 정도 있었던 거 같은데, 천 원짜리 오천 원짜리 만 원짜리가 섞여 있었다. 일단 돈을 뺏기는 건 너무 당연한 것이고 주머니에 있는 돈 다 뺏기면 안 되니까 그중 신중하게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오천 원을 선별해야 한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뒤적뒤적하면서 나의 모든 감각을 손끝에 모아서 오천 원짜리를 선별했다. 주머니에서 자폐를 한 장 뺏는데, 오천 원짜리가 나왔다. 나이스!! 그리곤 오천 원을 주고 '눈이 반쯤 풀린 형'에게 풀려났다. 오천 원을 받자마자 진짜 택시를 타고 휑하니 가버렸다. 정말로 택시비가 필요했던 것 같은데,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택시비를 뺏고 택시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보니 황당하기도 하고 오만 원 중에 오천 원만 뺏겨서 다행이기도 한 생각이 들었다.

 이날 처음으로 길에서 돈을 뺏겼는데, 이후부터는 시내에 나갈 때는 돈을 양말 속이나 팬티 속에 숨겨서 외출했다. 물론 주머니에는 천 원 이천 원 정도는 넣어뒀다. 주머니에 있는 돈만 뺏기면 나도 조금 뺏겨서 좋고 깡패도 뺏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으니 서로 윈윈 아닌가.


 학교를 마치고 현준이와 집에 가는 길에 있는 오락실 앞에서 우리 학교 3학년 형이 열중쉬어를 하고 무서운 형에게 뭐라 뭐라 듣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는 우리 학교 3학년 형은 자리를 무서운 형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나와는 상관없겠지 하면서 그 옆을 지나갔다. 그렇게 지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나와 내 친구를 불러 세웠다. 비가 조금 오는 흐린 날이었는데 그 무서운 형은 머리는 삭발을 했고 '기지 바지'에 '하얀 고무신'을 싣고 있었다. 우리 형이 말하기를 비 오는 날에 하얀 고무신을 싣는 사람을 조심하라고 했다.

 "돈 있냐?"라고 묻길래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진짜 없었다. 근데 돈 없다고 너무 당당하게 말했다. 나에게 다시 물었다. "돈 있으면 십원에 한 대씩이다"라는 정말 티비에서만 보던 말을 나에게 했다. 진짜 돈이 없다고 하니까 내 친구에게 돈 있냐고 물었다. 내 친구가 실제로 돈이 있었어서 그런지 말을 버벅거렸다. 그러더니 내 친구만 옆에 있는 좁은 골목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기다렸다. 뭔가 이야기를 길게 하고 있었다. 기다리는 게 지겨워질 때쯤, 현준이와 '하얀 고무신을 신은 형'이 나왔다. 그리고는 나보고 골목으로 따라오라고 했다.

 "제 친구는 그냥 좀 보내주세요"라고 현준이가 '하얀 고무신을 신은 형'에게 말했다. "니 진짜 돈 없나?"라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진짜 돈이 없어서 다시 한번 뒤져보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돈이 없다고 다시 말했다. 그러더니 내 머리를 살짝 쥐어박으며 "가라"라고 해서 '하얀 고무신을 신은 형'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집으로 가는 길에 친구에게 "얼마 뺏겼냐고 물었다. 친구는 오천 원을 뺏겼다고 했다. 이상했다. 이 친구는 분명 오천 원짜리가 없었다. 내가 알기로는 만 원짜리를 한 장 들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니 만 원짜리 들고 있지 않았나?"라고 물으니까 친구는 '하연 고무신을 신은 형'에게 꼭 사야 될 문제집이 있다며 오천 원을 거슬러 달라고 했단다. 그래서 그렇게 골목에서 이야기가 길어졌단다. 근데 그 '하얀 고무신을 신은 형'은 실제로 만원을 빼앗아서 오천 원을 거슬러 줬단다. 깡패한테 돈을 거슬러 받은 애도 이상하지만, 그걸 또 거슬러 주는 깡패도 너무 이상하고 신기했다.

 친구는 오천 원이라도 돈을 뺏긴 게 열을 받았는지 반건달이던 자기 이모부한테 그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자기 이모부와 함께 그 깡패를 응징하러 다시 오락실 앞으로 갔다. 하지만 깡패는 그날 수금이 다 끝났는지 그 자리에 더는 없었다. 반건달이던 친구의 이모부는 다방을 운영했는데, 나중에 친구들 사이에는 '조폭이다'에서 '조폭 행동대장이다'로 그리고 "칼 잡이다"라는 소문까지 났었다. 정작 친구 이모부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친구의 이모부가 무서운 조폭이 되어있었다. 집에서는 칼로 과일도 안 깎을 건데 칼잡이라니,,,


 그 시절은 오락실을 정말 많이 갔던 것 같다. 친구들과도 오락실에서 만나고 학교 마치고 오락 한판은 하고 가야 직성이 풀렸다. 하루는 학교 마치고 혼자 오락실을 갔는데, 가방을 오락실 기계 위에 올려놓고 열심히 오락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형이 나에게 물었다. "저 가방 니꺼가?"라고 묻길래 내 것 맞다고 하니까 알았다면서 다른 데로 갔다.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열심히 오락에 집중했다. 너무 집중한 나머지 내 가방이 사라지는 것도 보지 못했다. 그 형은 나에게 가방 주인이 내가 맞는지 확인 한 다음에 내가 오락에 집중할 때 가져간 것 같다. 내가 정말 병신 같았다. 가방에는 교과서랑 도시락, 필통 등 여러 가지가 있었는지 그냥 다른 건 그냥 다시 사면되는데, 교과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안 나왔다. 며칠을 교과서 없이 수업을 들었다. 책이 없다고 맞고 공부도 안되고, 오락실에서 오락 한번 열심히 한 게 이렇게 큰 문제가 될지 몰랐다. 친구한테 이야기하니까 '헌책방'에 가서 교과서를 사란다. 그래서 학교 마치고 헌책방에 갔다. 헌책방에서 국어 교과서, 영어교과서 등 잃어버린 교과서를 골라 집었는데, 이런,,, 그 책들에 내 이름이 적혀 있는 게 아닌가...

 책방 주인에게 그 책들은 내 책이라고 돌려달라고 하니까 자기들도 돈 주고 산 것이기 때문에 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지금 같으면야 장물이니 어쩌니 하면서 다시 돌려받을 수 있지만 중1 짜리가 장물의 개념을 알겠는가.... 그냥 내 교과서를 '헌책방'에서 다시 샀다. 그리고 국어 교과서는 이전에 사용했던 사람이 여자였는데, 교과서 모퉁이에 필기를 너무 잘해놔서 수업시간에 필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글씨도 너무 예쁜 글씨체를 적어놔서 그 글씨체를 따라 하다가 내 글씨체는 여자 글씨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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