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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디몬 Jun 19. 2020

1997년 경제는 병들고, 나는 중2병이 들다

6화 나라는 금을 모아서 병을 고쳤는 데, 내 중2병은 누가 고쳐주나

1997년, 나는 이제 중2가 되었다. 나도 키가 170센티가 넘어 외적으로 제법 어른스러워졌다. 1997년 대한민국은 IMF시대라고 해서 경제가 병이 들었는데, 나는 중2병이 단단히 들었던 것 같다.

중2가 되자 새로운 반에 들어갔다. 이번에도 11반이 되었는데, 중1 때만큼 서로를 견제하는 분위기는 없었지만, 그래도 서로 은근히 경계를 하였던 것 같다.

대충 반 친구들이 전부 교실에 들어온 것 같았는데, 갑자기 교실 뒷 문이 열렸다. 학년 주임 선생님이 한 친구에게 "들어가라"라고 하면서 뒷문으로 한 아이를 들여보냈다. 우리보다 나이가 조금 더 들어 보이는 아이였는데, 뒷문으로 들어오자마자 문을 세게 "꽝!" 하고 닫았다. 그러더니 매서운 눈으로 우리 반 내부를 살폈는데 아무도 아무 말 못 하고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자 학년 주임 선생님이 뒷문을 열더니 "마! 다시 문 살살 닫고 들어가라"라고 하니까 교실 밖으로 나가서 교실로 들어와 문을 살살 닫았다. 체면을 많이 구겼을 거다.

아무튼 그렇게 '나이가 조금 더 들어 보이는 아이'가 다시 교실로 들어오자 우리 반 통이었던 '재욱'이가 어중간한 크기의 목소리로 "문 살살 닫아라"라고 말했다. 기싸움이다. 서로 그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이가 조금 더 들어 보이는 아이'는 사실 첫 등장처럼 학교 생활은 그렇게 임팩트 있지 않았다. '나이가 조금 더 들어 보이는 아이'는 이름이 호규라고 했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게 아니라 복학생이다. 나이는 우리보다 2살이나 더 많았는데, 국민학교 저학년 때 1년을 휴학했고, 중학교 2학년 때 또 휴학을 해서 2살이나 많지만 우리랑 같은 학년이 되었다. 호규는 첫인상과는 다르게 조금 우울한 면은 있었지만 의외로 친구들과 잘 지냈다. 자기 친구들은 3학년인데 우리들한테도 그냥 친구로 지내자고 해서 친구로 지냈다. 우리 친형이 나보다 2살이나 많았는데, 우리 친형이랑 동갑인 사람과 친구가 된다니  1월, 2월에 태어난 빠른 년생들보다 더 족보가 꼬이는 일이 발생했다.

사실 호규의 한쪽 다리는 의족이었다. 중2병에 걸린 아이의 관점에서 봤을 때 호규의 그런 모습은 피터팬에 나오는 '후크선장'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못되게 한 행동인데, 그 당시의 나는 호규를 '후크선장'이라고 놀렸었다. 다른 사람의 장애를 그런 식으로 놀리다니,, 아무리 중2라곤 하지만 정말 철이 없었다. 그래도 호규는 화를 내기는 했지만 다 받아줬다. 아마 나 말고도 이전에 호규를 '후크선장'이라고 놀리는 친구(한 학년 위)가 있었던 것 같다. 호규는 한 번도 친구들에게 의족을 보여주지 않았다. 호규는 다리를 만지는 것도 싫어했는데도 나는 그때 호규의 의족에 '똑똑' 노크를 하며 "계십니까?"라는 재밌지도 않은 장난을 치기도 했다. 중2 때 호규랑 다른 친구들이랑 같이 학교 마치고 같이 놀러도 다니고 농구도 하고 볼링도 치러 다녀서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호규의 다리가 왜 의족이냐면, 호규가 국민학교 저학년 때 교통사고를 심하게 당했다고 한다. 트럭이 자기 다리를 밟고 지나갔는데 호규의 다리가 트럭 바퀴에 밟힌 채로 트럭 운전수가 브레이크를 밟아서 다리가 아예 으깨져서 재생이 불가능하게 망가졌다고 했다. 호규 말로는 차라리 베였었으면 봉합술로 어떻게 해볼 수도 있는데 다리가 으깨져서 망가진 거라 재생을 절대 불가능하다고 했다고 한다. 평생을 의족을 해서 살아야 하고 크면 클수록 키에 맞춰서 의족도 새로 사야 한다고 했다. 의족이 비싼데 계속 사고 있어서 자기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근데 엄마한테 미안한 사람치곤 공부를 너무 안 했던 아이다. 반 친구들 내신에 도움이 되는 친구였다. 


어느덧 중간고사 기간이 왔다. 중2가 되어서 공부를 너무 안 한 탓일까? 중간고사를 봤는데, 하나도 모르겠었었다. 그래도 시험 칠 때 내 철칙 중 하나는 빈칸은 만들지 말자라는 생각이 있었다. 중2 때 우리 반 담임은 과학선생님이었는데, 주관식 문제 중 "블라블라 무슨무슨 에너지는?"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답은 가시광선이었는데, 그게 기억이 안 났다. 객관식이었으면 **"겐또겐또 또겐또 일이삼사오일이삼사오~"라는 갠또 주문을 외워서 대충 답을 적을 수 있는데 주관식이라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단 OMR카드에 앞에 칸을 약간 비우고 "0000 에너지"라고 답을 적었다. 근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에너지라는 건 힘이 있어야지'라는 생각으로 에너지 글자 앞에 파워를 적어서 "00파워에너지"라고 적었다. 그래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맨 앞에 내 이름을 적었다. "성주파워에너지"라고,,,

시험기간이 끝나고 나는 내가 과학시험 답안지에 "성주파워에너지"라는 어처구니없는 답을 적은 걸 까맣게 잊고 있을 때쯤,, 담임이 엄청 화가 난 모습으로 각목을 들고 교실로 들어와서는 "김성주 나와"하더니 엎드려 뻗쳐를 시키고 풀스윙으로 내 허벅지를 때렸다. "뭐라 뭐라 블라블라~ 시험이 장난이야?"라고 하면서 분이 안 풀렸는지 내 이마를 발로 찼었다. 그러고는 복도에 나가서 무릎을 꿇고 손들고 있으라고 했다. 내가 복도에 나가서 벌을 서고 있을 때 담임은 내가 어떤 답을 적었는지 반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옆반에 나보다 더 한놈이 있다고 그놈도 그 반 수업 들어가서 조져야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옆반에 나보다 더한 놈은 정욱이라는 아이였는데 일기도를 그리는 문제에서 1,000 hPa 기준으로 4 hPa에 맞춰 점을 연결하는 문제였는데, 예를 들어 996 hPa 점을 전체 연결, 992 hPa 점을 전체 연결하는 문제였다. 중2 때 정말 공부를 안 했던 나도 풀었던 문젠데 정욱이라는 아이는 '빨간 볼펜''파란 볼펜''검정 볼펜' 3자루를 한 손에 잡고 마구마구 돌려서 낙서를 했다. 그러고는 그 옆에 태풍이라고 적었단다. "성주파워에너지"나 일기도에 태풍이라고 그리는 놈이나,, 우리는 다들 중2병에 걸렸었나 보다.



   

**"겐또겐또 또겐또 일이삼사오일이삼사오~"에서 겐또는 일본어 켄토우에서 나온 말로 시험 볼 때 모르는 문제의 경우 객관식 보기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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