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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e Nov 26. 2018

필살기가 잘 써지는 장소

'알쓸신잡 3'을 보다가 갑자기 든 잡생각

호텔에서 글 쓰는 작가가 있어요


무릇 대작이란 고난과 역경으로 대표되는 환경에서 피어나야 한다는 편견이 있었나 보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힘든 시절 고생했던 장소로 돌아간 대가의 얘기는 들어봤어도 호텔에서 글을 쓰는 작가라니..!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신선한 조합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잘 먹고 잘 노래하는 가수 성시경

이전에 모 프로그램(아마 마녀사냥으로 기억한다)에서 성시경 씨가 말한 "애절한 감성을 노래해야 하는데 발라드 가수가 포동포동 살이 쪄있으면 얼마나 안 와 닿겠어요" 정도의 느낌? 물론 가수가 노래를 잘하고 작가가 글을 잘 쓰면 된다는, 본질에는 이견이 없다


하긴, 최적의 장소는 그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공간이다. 그런 면에서 호텔은 내가 직접 하기 귀찮은 것들은 모두 '서비스'의 영역으로 돌려버리고 내가 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최적의 공간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것으로 나의 짧은 편견에 대한 역지사지는 간단하게 끝났다


각자의 일상을 유지하는 공간


이어 김영하 작가가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한 일간지에서 '거실을 서재로' 운동을 했더니 식구들이 식사를 TV가 있는 안방에서 했다는 것이다. 1) 요즘 흔치 않게 식사 시간대가 모두 맞는 가족 구성원 2) 구성원 모두 TV를 사랑하는 사람들 3) 대화할 거리가 오죽 없으면 식사할 때도 TV만 보다니 4) 이 운동 자체가 아주 옛날의 것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충격적인(?) 결과에 키득거리고 있을 때쯤 들린 유 작가님의 말씀


"안 그런 집도 많아요. 우리 집은 대부분의 시간을 부엌의 식탁에서 책을 보는데.."라고 하신다. 역시 작가님 집은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 가족 구성원은 집에서 각자의 일상을 어떻게 소비할까?


우선 필자가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는 집은 꽤 연식이 된 아파트라 거실과 안방의 규모가 크고 개별 방은 흡사 고시원과 같은 코딱지만 하다는 TMI를 알려드리며.. 


은퇴하신 아버지는 거실에서 주로 컴퓨터로 글을 읽으며 궁극의 멀티태스킹으로 TV를 시청하신다. 종종 운동이나 산책 나가시는 것 말고는 거실과 안방이 주 활동 무대니 집안에서 제일 넓은 면적을 활용하는 구성원


대체 수건은 왜..?

다음은 우리 집의 유 작가 어머니. PC와 TV 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옆 부엌 식탁에서 책도 열심히 읽으시고 자료도 열심히 만드신다. 분명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랑 거리가 먼데, 어찌 저리 앉아 계실까 이따금 경이롭기도 하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 뭐 이건가.. 이 진흙더미(?)에서 수석교사의 삶을 피워낸 이 시대의 현자


필자는 PC와 듀얼 모니터로 꽉 찬 책상과 침대 그리고 나머지 공간은 서랍으로 둘러싸인 작은 방에서 거주 중이고 누울 때는 잠들 때뿐이고, 앉아 있을 때는 주로 유튜브 시청을 한다

즉, 무언가를 할 때는 항상 밖에 있다는 뜻. 주로 스타벅스의 나무 책상 자리를 애용했으나, 오후 시간 때가 너무 시끌벅적한 관계로 새로운 아지트를 찾아 정착했다. 적당한 백색 소음과 눈에 무리가 가지 않는 조명이 퍽 마음에 든다. 아마 향후 몇 달간은 이 곳에서 독서와 글쓰기와 편집과 구직 등 모든 활동을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동생님은 나와 정반대, 모든 관심사(자꾸 파이널 판타지를 같이 하자고 한다)와 활동을 방에서 하는 '내 방 사랑' 유저이다. 이따금 어머니께 "제발 쫓아내지 말아 주세요~" 할 정도로 본인 공간에 대한 만족도가 높달까.. 필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신기하다


이렇게 네 구성원끼리 겹치는 포인트가 하나도 없는 게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서로 싫은 소리 하지 않을 최적의 조건인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마 다 큰 자식이 아직 독립 안 한 여느 가정이라면 다 이렇겠지..?




필살기가 잘 써지는 장소는?


A. 날이 좋아도 날이 좋지 않아도 내 할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구석진 둥지 같은 자리


필살기를 위한 각자의 기 모으기 장소가 조속히 우리 모두에게 마련되기를 바라는 간곡한 마음으로 오늘의 뻘글리쉬도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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