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ne Dec 04. 2018

이런 장치도 나쁘지 않네

올해 첫 겨울비를 보고 든 잡생각

그래 눈보다는 비가 낫지
(이 말을 들은 필자의 표정)

연말의 들뜬 분위기와 흰 눈 그리고 캐럴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다. '필시 저 말은 출퇴근을 자차로 해야 하는 편의의 입장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겨울엔 당연히 눈 아니었어?


'어차피 차가 막히고 신발이 젖는 건 눈이나 비나 매한가지 아닌가..? 그럼 겨울 감성이랑 잘 맞는 눈이 훨씬 낫지'


차마 소리 내어 따지지는 못하고 속으로 삼키곤 했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겨울'의 하이라이트를 부정하는 것 같아 적잖이 언짢았던 모양이다. 게다가 "군대에서 평생 치울 눈~"으로 시작하는 무용담이라도 붙게 되는 날에는 미간을 찌푸리며 '겨울 = 눈'이라는 나만의 겨울 공식에 더 두꺼운 벽을 치게 되었다


여전히 불편했다


생각해보면 '겨울비'라는 녀석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아직 덜 춥나 눈도 아니고 비가 뭐야 12월에..' 정도가 내가 인식한 겨울비에 대한 전부였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니 보지도 않고 문전박대를 하는 놀부의 마음씨와도 같은 것


오늘, 나만의 시간을 많이 갖게 된 이후로 맞는 첫 겨울비가 내렸다. 우산을 따로 챙겨야 했으며 신발과 바지 끝단이 젖었고 걸음걸이도 자연스레 느려졌다. 여전히 불편했고 자유롭게 다니던 것에 비하면 에너지를 배로 쓰는 느낌에 빠르게 피곤해졌다


'역시 겨울은 (내가 치우지 않는) 눈이야'


불편함을 마주한 내 겨울 공식은 변하지 않았지만, 차분함 한 스푼 더한 그 겨울비 덕에 반전의 효과가 어느 정도 더해진 것도 사실. 마냥 들뜨지 않게 무게를 잡아준 덕에 집중이 꼭 필요한 일을 오늘 할 수 있었고, 달력 한 장도 남지 않은 올해의 마무리에 대해서도 짧게나마 생각해볼 수 있었네? 마치 절정 전 위기를 이곳저곳 알뜰히 살핀 덕에 좀 더 극적인 절정을 맛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이런 장치도 나쁘지 않네'


앞으로는 겨울비를 이리 부를 것 같다. 다만 꼭 필요한 시점에 한 번만 와줬으면 해


매거진의 이전글 필살기가 잘 써지는 장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