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거절 속에서 진실해진다

아내라는 이름의 환상의 결과, 감정과민반응

by 마카롱 캡슐 소녀


잭은 ‘상처받은 자’로서 침묵의 권리를 행사했고, 릴리는 ‘남겨진 자’로서 이해와 헌신을 감정의 언어를 바치며 관계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아무 말 없이, 아무도 모르게, 그 사람의 방식과 감정만이 정당화되며 관계를 주도했다.

오히려 누구의 침묵은 때론, 관계의 권력을 비대칭적으로 굳히는 무언의 도구가 된다.

잭이 감정의 고통에 대해 침묵하는 방식은 릴리에게 이해되고 보호받지만, 릴리의 감정과 방식은 ‘과잉 반응’처럼 여겨지거나 무시되어버린다.

겉으로는 '잭의 아내'라는 중심적 역할 같지만, 실제로는 그 관계 안에서 감정을 말할 수 없는 주변부 인물

이 되었다.


결국 릴리는 자신이 믿었던 관계는 아내역할이 부여한 환상이었다

즉 감정을 눌러야만 유지될 수 있었던 관계이다.

그 틀은 감정의 균형이 아닌 감정의 억제로 유지되어 왔던 것이다.

릴리는 그동안 ‘좋은 아내’, ‘이해심 많은 사람’이라는 사회적 역할에 따라 감정을 억누르며 관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거절당한 그 순간, 깨닫게 된다.

그 관계는 애초부터 감정을 희생해야만 유지될 수 있는 일방적 구조였다 것을 말이다.


그녀는 처음으로 묻는다.
“왜 이렇게 아프지?”

이 질문은 자기 내부로 들어가는 출입구이자, 오랜 관계 속에서 배제되어온 감정과 만난다.

그녀는 이제야 감정이 단지 사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임을 깨닫는다.


누가 표현할 수 있고, 누가 눌러야 하는지를 결정짓는 관계 권력의 침묵된 규칙을 통과하며.

“나는 느낀다. 나는 열망했고, 아팠고, 슬펐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제 이 말은 단지 누군가의 사랑을 구하거나, 이해를 바라는 말이 아니다” 이제 더이상 감정을 어떤 목적을 위해 쓰지 않겠다는 선언문이다.


영화 릴리와 찌르레기 (The Starling, 2021)에서 릴리와 상담사가 나누는 대화장면


남편 잭이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고, 릴리는 그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운전해 왔지만 면회를 거부당한다.

상담사는 환자의 권리를 이야기하지만, 릴리는 감정이 북받쳐 오르며 “권리이고 나발이고”라고 말한다.

그 한마디에 그녀의 절망과 분노, 그리고 사랑이

다 담겨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갈등을 넘어서, 상실과 회복의 과정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통을 겪는 부부의 단면을

보여준다. 릴리는 행동으로, 잭은 침묵으로 슬픔을 표현한다.


릴리: 잭 불러줘요

상담사 :사실 잭이 방문객을 거부했어요

릴리:저는 방문객이 아니고 그의 아내에요

상담사: 환자가 자기만의 공간을 원하기도 해요

릴리: 공간이요? 나는 여기오느라 왕복 2시간을 운전했어요

상담사: 법적으로 보장되는 권리에요

릴리: 권리이고 나발이고

상담사:릴리 진정하고 앉으세요.

릴리: 앉으면 뭐가 해결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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