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재회가 나를 만든다

.일상 속, 다시 느끼는 순간들

by 마카롱 캡슐 소녀

재회는 사건이 아니다

재회는 흔히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나는 사건으로 이해된다.
연인과의 애절한 재회, 나쁘게 혹은 슬프게 헤어진 이들과의 만남, 어쩔 수 없이 헤어졌던 순간들.
하지만 재회는 감정과 존재의 동기화다.
단순히 다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느끼고, 같이 존재하는 것.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와 재회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다시 느끼고 싶은가?


조카와의 만남

오랜만에 조카를 만났다.
물리적으로는 함께 있었지만, 감정적으로는 어긋나 있었다.
내 시선은 반려견 보리에게 가 있었고, 조카는 그것을 예민하게 감지했다.
그는 조용히 말했지만, 그 말은 무겁고 깊었다.


“나는 보리보다 덜 중요한 것 같아. 나는 내 존재를 느낄 수 없어.”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할 수 있는 말인가.


그 말은 단순한 질투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기 존재가 부정당했다는 감정의 표현이었다.
그는 나와의 재회를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무너졌다.

침대에 등을 보이며 누운 그의 모습은 말보다 더 깊은 감정을 말하고 있었다.
그의 등은 나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나는 지금 너에게서 멀어지고 있어. 너와 함께 있고 싶었지만,
너는 나를 보지 않았어.”


그 순간, 나는 조카가 느낀 감정의 무게를 이해했다.
그는 단지 사랑받고 싶었던 것이다.
단지 나와 감정을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전위 공격성과 기대의 실망

조카는 침대 위에서 아래에 있는 보리에게 다리를 뻗었고,
보리는 그것을 장난으로 받아들였지만 결국 살짝 물었다.
조카는 보리에게 화를 냈고, 나는 보리를 두둔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순간, 조카의 화는 나에게 향했다.

이것은 전위 공격성이다.

전위공격성이란 사랑받고 싶은 대상에게서 실망을 느낄 때, 더 안전한 대상에게 화를 돌리는 것이다.


그는 나에게서 기대한 100%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그 실망은 불안으로 이어졌다.
그 불안은 감정의 흐름을 왜곡시켰고, 결국 지금 있는 공간에서 사건을 만들고 관계의 균열을 일으켰다.

그는 말하지 못했지만, 그의 행동은 말하고 있었다.


“나는 너에게 사랑받고 싶었어.
그런데 너는 나를 보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보리에게 화를 냈어.
너에게 화를 낼 수 없었으니까.”



재회는 존재의 동기화다.

“같이 느끼겠다”는 선언이 이루어질 때, 진짜 재회가 시작된다.

하지만 그날 우리는 같이 느끼지 못했다.
나는 보리와 눈빛으로, 손짓으로 감정을 나누었고,
조카는 그 감정에서 배제되었다고 느꼈다.

그는 나와 재회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와 감정을 동기화하지 못했다.
그는 나에게서 멀어졌고, 나는 그를 놓쳤다.

이것은 단순한 실망이 아니라, 존재의 단절이다.
우리는 함께 있고 싶었지만, 나의 시선은 그를 지나쳤고,
그도 나의 시선을 지나쳤다.


재회는 소유가 아니다

재회는 상대를 다시 소유하려는 욕망이 아니다.

“내가 너를 다시 느끼고 싶다”는 순수한 감정의 회복이다.

조카는 나에게서 사랑을 받고 싶었고,
나는 그 감정을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그 감정이 왜곡되면, 우리는 다시 원망과 실망의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그 강은 감정의 단절이며, 존재의 분리다.


만족 지연과 감정의 성숙

나는 조카에게 말했다.

“기다릴 수 있는 마음을 가져보자.”

이것은 만족 지연 훈련이다.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우리는 불안을 느낀다.
너의 깊은 마음은 이미 나에게 전해졌어.

하지만 상대가 그 진심을 몰라준다고 느낄 때,
그 불안을 견디고 감정을 지연시키면, 우리는 더 깊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해야 할 선택은,
내 사랑의 마음을 철저히 지키는 태도이다.

재회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때, 감정을 다시 느끼고, 왜곡 없이 존재를 다시 연결하는 순간.
그 순간은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감정의 성숙된 태도이며, 마음을 지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나는 매일 재회한다.
재회는 단순한 만남을 넘어서,

“내가 다시 느끼고 싶은 감정과 존재를 선택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자기 이해의 실천이며, 관계의 회복이다.
그러므로 지켜야 할 것, 지속해야 하는 것은
순수한 마음과 진심의 태도이다.

그 마음이 순수할 때, 우리는 공허하지 않은,
꽉 찬 감정의 공간에 머물 수 있다.

그리고 그 만남은,
다시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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