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비 Jun 21. 2022

분홍 소시지

분홍 소시지는 감성이었다.

주부로 살다 보면 가족의 끼니를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 살게 된다. 

아침 걱정, 점심 걱정, 저녁 걱정..

오늘은 뭘 먹어야 할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니는 고민에 어쩔 땐 하루 종일 먹는 생각만 하는 것 같다. 온 가족이 모두 있는 주말에는 더욱더 고민을 하게 되는데 그날은 마트에 있는 분홍 소시지가 유난히 눈에 보였다. 오늘은 분홍 소시지를 맛보게 해줘야겠다 싶어 제일 길고 길쭉한 분홍 소시지를 집어 들었다. 알맞은 굵기로 썰어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물 샤워를 해서 기름을 두른 팬에 예쁘게 부쳐서 내놓을까 했지만  오늘은 간단히 날것 그대로 부쳐 보기로 했다. 기름과 맞닿은 분홍 소시지는 특유의 향을 풍기며 알맞게 익어 가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라일락 접시에 담아 식탁에 내놓았다. 모두가 둘러앉아 분홍 소시지를 시식했다. 처음 보는 낯선 음식을 보는 아이들에게 소시지라고 얘기를 해줬더니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과는 다르게 생겨서 인지 살짝 경계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이들은 몇 번 먹어 보더니 특이한 소시지라고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먹어왔던 소시지보다 맛이 없다며 냉정한 맛의 평가를 내렸다. 


분홍 소시지는 나의 학창 시절 도시락 반찬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엄마는 분홍 소시지를 얇게 썰어 계란물에 적셔 알맞게 부쳐 내어 세 딸의 도시락에 늘 넣어주셨다. 내 도시락에는 분홍 소시지가 늘 자주 등장했고 지금 나의 아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다른 소시지에 비해 참 맛이 별로다라며 먹었던 기억이 났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세 딸의 도시락을 싸던 엄마는 나보다 반찬을 걱정을 3~4배쯤 더하는 고민이 많은 엄마였을 것 같다. 지금처럼 학교에서 무료 급식을 하는 풍족해진 삶을 살아가는 세대에게는 참으로 그 옛날 엄마들의 부지런함에 감탄을 하게 된다. 지금보다 자식들이 더 많았고 점심이 아닌 저녁까지 싸서 보내야 했던 엄마들.

재정 상황이 빠듯했던 집안의 살림을 도맡고 도시락의 메뉴를 어쩔 수 없이 분별해야만 하는 엄마의 입장은 사실 정해져 있는 그것을 고민 없이 선택해야 할는지도 모르겠다. 


어린날 비엔나 소시지가 아닌 분홍 소시지를 자주 싸주는 엄마가 사실 그다지 좋지 않았다.  분홍 소시지는 를 워낙 많이 먹은 것도 있지만 그것 말고도 맛있는 반찬이 많은데 분홍 소시지를 항상 싸주는 엄마에게 불만이 많았다. 자주 먹었던 기억에 그냥 가치 있게 생각하지 않던 반찬이 바로 분홍 소시지였다. 그런 분홍 소시지가 이젠 별미로 여겨져 옛날 감성을 재현하는 도시락도 팔고 있다. 


예전 자주 가던 카페에  옛날 도시락 메뉴가 있었다. 납작한 양은 도시락에 고추장 멸치볶음, 분홍 소시지, 김치 볶음에 밥과 계란 프라이를 얹어 있는데 그게 바로 옛날 도시락이었다. 납작한 양은 도시락에 있을 것 다 있는 풍족한 옛날 도시락. 그 조합은 하나의 요리라도 해도 될 만큼 너무나 맛있었다. 마트에 가면 제일 저렴하게 팔던 분홍 소시지, 반찬중 가장 가치 없게 여겼던 분홍 소시지가 지금은 이렇게 멋진 변신을 하다니.. 지금은 사람들도 옛날 감성이니 뭐니 하며 찾는 메뉴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한동안 쳐다보지도 않던 분홍 소시지가 주부가 되어 가족들 반찬에 내어 놓는 걸 보면 내게 스며든 분홍 소시지의 의미가 이제는 더 이상 부정이 아닌가 보다. 반찬으로 내놓은 분홍 소시지가 참 맛있다며 젓가락으로 들던 나의 모습이 이제는 낯설거나 억지가 아닌 진심이 배어 있다. 어린날 늘 함께 하던 분홍 소시지가 이제는 지나간 추억으로 남아 있고 진한 향수로 내 곁에 머물러 있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분홍 소시지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매력. 

그때 먹었던 맛은 그럭저럭 그냥저냥 일지는 모르지만 언젠간 다시 생각나는 그런 맛. 

아이들에게 맛보게 해 줬을 때도  다른 소시지와는 차이점을 알고 별로라는 맛 평가를 했지만 성인이 돼서 또다시 찾게 되고 반찬으로 내놓았던 엄마를 추억할 수 있게 될 그런 매력을 가진. 분홍 소시지.


한마디로 분홍 소시지는 감성이었다..


성인이 돼서 이렇게 추억할 수 있는 음식이 있다는 건 참 행운이다. 옛 기억을 되살리며 지난날을 기억하고 내게 특별한 음식이었다는 건 나쁘지 않다. 그 시절을 추억하며 여행할 수도 있고 지금을 반성할 수도 있다. 옛 기억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찰 때 분홍 소시지 같은 쏘울 푸드를 생각하다 보면 나를 좀 더 이해하고 게되고 순수했던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그렇게 한참 추억 여행을 하고 나면 내 마음이 어린아이처럼 말랑해지는 것 같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내가 분홍 소세 지덕에 좋았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니 힐링 포인트를 잘 잡아주는 상담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도 분홍 소시지를 기억하며 싫었던 기억만큼이나 좋았던 기억도 많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고 추억 속에서 살아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