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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Jun 24. 2022

65점의 의미.

초등 3학년이 되고 나니. 점점 뒤쳐질까 문제집을 하나 더 사게 되고 보지도 않던 유튜브를 뒤져보며 불안을 달래 본다. 점점 늘어나는 과목에 다 책임지진 못해도 조금씩은 접하게 해 주고 따라갈 수 있게 뒷받침을 해줘야 지란 생각에 딸아이 게 강요 아닌 강요를 하게 된다.

겨우 국어 문제집 하나를 푸는 게 아이에겐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오는 게 우리 집 현실인데 그럴 때마다 어떤 식으로 대처를 해야 할까 늘 고민하게 된다.


어느 날.

수학 단원 평가를 보고 집에 와서는.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백점 맞고 싶어!"

라고 얘기하며 백점 맞은 아이들을 부러워하는 말을 뱉는다. 그럴 때마다 현실적인 나의 대답은

"그 아이들은 집에서 문제집 엄청 많이 푼 거야. 그만큼 공부해서 받은 점수인 거야" 라며 팩트를 얘기해 준다.

사실 나의 속마음은 문제집 하나도 풀기 싫어하고 하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가 맘을 다잡고 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겨우 3학년밖에 안된 아이에게 너무 심오한 뜻을 전달하는 게 무리수인 줄 알지만  현실을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받는 딸아이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선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무리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스스로 잘하길 원하고 욕심이 많은 아이를 뒷받침해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한 살 한 살 더 먹을수록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대놓고 얘기하자면 내 아이가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게 가장 내가 받아들이기가 힘든 부분이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모두가 공감할 만할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읽어 줬던 무수히 많은 동화책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 건 내가 기대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기본적인 지식과 두뇌 발달이 되어 있지 않으면 결국 모래 위에 쓰러져 가는 집 같은 상황이 될 거라는 생각에 두뇌의 사이즈와 지식을 쌓는 것에 포커스를 항상 두었다. 스스로 원해서 공부할 때 좀 쉽게 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나의 생각에..

그렇게 두뇌 만들기에 주력했던 나는 현재 현실을 깨닫고 있다. 역시 공부는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다. 스스로 동기가 되어야 하는데 글자가 적혀 있는 책보단 손으로 만들고 몸을 움직여서 기쁨을 얻는 게 훨씬 큰 아이라는 걸 알았다. 종이접기를 끝내주게 잘하고 콩알보다도 훨씬 작은 비즈를 실에 꿰어 근사한 팔찌와 반지를 만들어 내며 기쁨을 얻는 아이. 방과 후 시간 컴퓨터반에 여자 친구들이 한 명도 없어도 재밌다며 남자아이들과 늘 수강하는 아이. 태권도 발차기 연습을 늘 하며 다음 심사에서 꼭 오르고 싶어 하는 아이. 이런 딸아이에게 글자가 적힌 문제집은 그저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 같다.


나는 조금씩 마음을 고쳐 먹기 시작했다. 원하지 않으면 하고 있던 과목의 한 권의 문제집도 최소한으로 줄이기로 했다. 결국 문제집을 풀지 않는 날이 더 늘어나고 있다.

수학과 국어 단원 평가를 보고 온 날 백점을 맞고 싶은데 안돼서 속상하다고 하는 아이게 말해주었다.

"엄마는 하빈이 가 빵점 맞고 오는 날 축하해줄 거야. 빵점 맞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알아? 지금 점수는 너무 높아~" 아이는 엄마가 농담을 하며 위로해 주는걸 금방 눈치챘지만 그래도 더 잘하고 싶은 욕구를 누르고 받아들이기엔 부족한 얘기였다.


그날은.

늘 85~95점 사이를 오가는 점수를 받아오는 아이가 수학 단원 평가에서 65점을 맞아왔다.

저녁 8시쯤 되어서야 나에게 조심히 얘기하는 딸아이.

"엄마. 나 수학 단원 평가 봤는데 65점 맞았어... 전보다 더 떨어졌어. 선생님이 엄마 확인받아오래.."

"그래?  한번 볼까?"

"빵점 맞아야 하는데... 엄마 그거 알아? 빵점 맞는데 한걸음 더 다가간 거다~ 빵점 맞으면 더 유명해질 거야~~!"

피식 웃음이 났다. 사실 속으로 엄청 속상해하는 게 티가 나는데 빵점 얘기를 해가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딸아이.  잠자리 들기 전 딸아이에게 가서 살짝 물어보았다.

" 하빈아. 근데 왜 늦게 얘기했어?"

"응.. 엄마가 내 점수보고 화낼까 봐~"

"그랬구나.. 하빈이는 점수가 낮은 것 같아 하빈이도 속상하고 엄마도 속상할까 봐 그런 거지?"

"응..."

스스로 보기에 부족했던 점수가 실망스러운 하빈이.

사실은 내가 화를 낼까 봐 무서워한다기보다 65점이란 점수를 입 밖에 꺼내기가 두려웠던 거다.

스스로에게 실망스럽고 엄마가 실망하는 모습을 마주하는 게 불편했던 것 같다.


아이의 커가는 과정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늘 푸르지만은 못하다. 백점을 받아오든 50점을 받아오든 늘 여전히 사랑스러운 내 아이인데 가끔 먹구름이 낄 때면 평정심을 잃기도 한다. 난 많은걸 강요하는 엄마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늘 아이 위주로 생활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이가 점수를 보고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게 아니었단 걸 알았다. 결국 점수에 연연해하고 불편해하는 건 나의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인 것 같아 미안해졌다. 숫자의 크기에 대한 인식을 결국 내가 심어준 것 같아 반성하게 됐다.


아이의 65점이란 점수는 여러모로 큰 의미로 다가온 뜻깊은 숫자였다.

빵점 맞는데 한걸음 다가간 숫자.

정말 유명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숫자.

엄마의 오만함을 잠재울 수 있는 숫자.


오늘 또 나는 딸아이에게서 배운다. 너의 깊은 내면을 이해하기엔 아직도 부족한 엄마구나.

조금 더 내려놓는 연습을 해볼게. 예쁜 나의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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