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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Jun 06. 2022

다양성을 인정하면 얼마나 좋을까.

신이 주신 숙제

며칠 전 친구와 오랜만에 전화통화를 했다. 친구와 나의 아이들은 연령대가 비슷한 초등 저학년이고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평범한 엄마였다. 전화통화나 카톡으로 종종 주고받고 가끔 통화하는 서로의 안부 정도가 전부였지만 공통된 엄마의 역할이 서로의 끈을 이어주게 되었다. 사람들과 교류를 많이 하지 않는 나로서는 다른 엄마들의 삶은 어떨까. 육아는 어떤 식으로 하고 교육은 어느 정도 할까라는 생각을 하고 궁금해진다. 편한 관계가 아닌 이상 사실 물어보기도 힘들고 얼마나 솔직하게 얘기해줄지 의문이기 때문에 믿음이 좀 안 가는 편이다.


우리들의 대화는 주로 아이들에 대한 소소한 얘기들이 주를 이루었다. 친구는 영문과 전공으로 오후 3시간 정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영어 강사로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남아 둘을 키우는 엄마지만 아이들이 우왁스럽거나 짓궂은 아이들이 아니어서인지  벅차 하는 엄마라기보다 잔잔한 분위기의 엄마인 것 같은 느낌이 더 들었다. 자연스레 아이의 공부량에 대해 듣고 너무나 놀랐다. 국어 문제집만 5권이라는 친구의 말에 난 정말 공부를 안 시키는 엄마구나 싶었다. 국어, 수학, 영어 등. 공부 습관을 길러주기 위한 친구의 노력은 참으로 대단했고 더 놀라운 건 주위의 엄마들에 비해 본인은 많이 안 시키는 편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아이의 공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지 오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과목은 늘어나고 지금 기초를 탄탄하게 잡아주지 않으면 길고 긴 입시의 레이스에서 힘이 들까 봐 고민을 하게 된다. 이런 내 마음과 다르게 첫째 아이는 학습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고 늘 벅차고 힘들다고 생각한다. 국어 문제집 한 권. 수학 문제집 한 권이 전부이고 영어로 하루 10분이면 끝나는데 그마저도 규칙적으로 하지 않는 우리 집 현실이다. 줄여주고 또 줄여줘도 늘 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보며 내 마음은 늘 갈팡질팡이다.  

아직 어린 나이에 너무 학습을 강요하나 싶기도 한데 친구의 말을 들어보면 나는 정말 안 시키는 편 같았다.

이렇게 문제집 세 쪽 푸는 것도 버거워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학습을 유지시키기보다 아예 내려놓고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때까지 두어 볼까라고 생각도 많이 한다. 공부는 스스로 느끼고 내적 동기가 되어야 하는데 아직 느끼지 못하는 아이에게 강요 아닌 강요를 하다 보니 서로 힘들어지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 같다.


나는 왜 아이에게 학습을 시켜야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어쩌면 흥미도 없는 아이에게 학습의 중요성을 강요하고 밀어 넣는 게 나의 결핍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더 살아본 엄마의 관점에서 어렸을 때 다져놓은 기초 실력이 있어야 고학년에 가서  더 헤맬 수 있다는 생각을 사실 참 많이 한다.


어렸을 때 나는 기초가 참 안된 학생이었다. 부모님의 여력이 되지도 않았고 누가 이끌어 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 초등 저학년 때부터 참 학습적으로 부족한 아이였다. 대신 나는 늘 욕구가 많은 편이었고 하고자 하는 의욕이 왕성하고 꾸준한 편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나의 학창 시절은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중학교 이상이 되면서부터 기초의 중요성을 너무나 절실히 느꼈다. 지금까진 어찌어찌 노력으로 이어왔는데 중학교 과정부터는 수준도 높아지고 기초가 탄탄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를 넘어가기가 참 힘들다는 걸 알았다. 고등학교는 더더욱 넘사벽이란 걸 알고 많이 괴로워했다. 그런 나의 감정이 얼마나  가슴을 팠는지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내가 생각한 그 기초를 세우기 위해 참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어린아이 때는 엄마가 원하는 데로 재미나게 가지만 이제 초등학생이다. 나의 생각이 생기고 주장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본인의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타고난 성향도 보이기 시작하는데 학습에 대한 알레르기가 살짝 있어 보였다. 이런 아이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고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의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 원치 않는 것을 강요하는 엄마란. 아이 입장에서 얼마나 곤욕일까 싶다.

"엄마는 다른 엄마들에 비해 많이 안 시키는 편이야." 하며 아이를 이해시켜 보려 하지만 이미 문제집 하나라도 있는 것부터가 아이에겐 곤욕인 듯 나를 쳐다본다. 그럴 때면 참 당황스럽다. 비교적 많이 안 시킨다는 말은 팩트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만은 아이가 엄마를 이해해 주기 바라며 설득 아닌 설득을 해본다.


학습의 묘한 굴레를 벗어날 순 없을까.

유튜브 짤로 보았던 카이스트 총장님이 하는 말이 떠오른다. 아이들 공부를 많이 시키지 말라고 얘기하시는데 창의성에 관련된 발언은 좋으나 이나라 교육의 현실에는 참 안 맞는 발언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소위 말하는 타고난 영재들. 카이스트를 들어갈 만한 수재들 입장이야 공부를 많이 하지 않고 놀아도 결국 상위권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에 별 문제없을 것이다. 영재들은 정해져 있고  보통의 아이들이 주를 이뤄 살아가는 현실에 공부를 시키지 말라고 하는 건...'글쎄요.....' 하며 반기를 들어보게 된다.


사회적 분위기를 다양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로 만들어가면 좋겠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각각 가지고 있는 색깔이 다르고 특성들이 있는데 모두 1등으로만 달려가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나는 다르게 생각하는 엄마가 되어야지 하며 늘 다짐해본다. 하지만 현실의 벽과 다른 아이들 교육 수준을 생각해보니  자꾸 도태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아이를 한 인격체로 존중하기보다  상하관계를 더 명확히 해서 쥐려고 하는 것 같다.

 

지금도 엄마로서 늘 고민을 많이 한다.

과연 내가 내 아이에게 귀감이 될만한 행동을 하는지. 조금 더 살아보고 경험했다는 이유만으로 방망이를 들고 있는 건 아닌지. 정답이 있으면 좋겠지만 자녀를 키우는 일에는 정답이 없는 것 같다. 신이 내게 맡긴 아이들을 이 세상에 내놓고 다시 돌려주기 위해 귀하게 키우는 게 지금 내가 고민하지 않고 실천할 수 있는 일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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