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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지구는 푸르다.

기후행동을 준비하는 A직원을 보며

by 단호박



요즘 들어 회의실에 들어서면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노트북 화면 가득히 ‘푸른발자국’이라는 로고를 띄워두고, 그 앞에서 뭔가를 정리하느라 분주한 얼굴. 평소 조용하던 A직원이 요즘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회의 중 자료를 넘기는 손길도 단호하고, 발표하는 목소리도 묘하게 단단하다. 전에는 그런 열정을 본 기억이 없는데, 무엇이 그를 이렇게까지 몰아가고 있는 걸까.


“과장님, 이번 캠페인은요, 그냥 하는 행사가 아니에요. 걸어보면 알아요. 우리가 얼마나 무심했는지요.” 어느 날 복사기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A직원이 그렇게 말했다. 순간, 무심코 지나치려던 발걸음이 멈췄다. ‘생태도보, 채식 식단, 기후장터, 버스킹 공연… 이 모든 걸 진짜 한다고?’ 속으로는 반쯤 의심하며 미소를 지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한때 나도 그랬다. 사회복지라는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마음이 움직이는 일에 몸이 먼저 반응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예산은 되냐, 안전은 보장되냐, 실현 가능하냐’를 먼저 따지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조심스럽고, 신중하고, 현실적인. 칭찬받기 좋은 태도지만, 누군가의 시도 앞에서는 종종 ‘의욕을 꺾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그런 내가 A직원의 ‘푸른발자국’을 지켜보며 조금씩 흔들렸다. 실천 다짐카드를 참가자들에게 돌리며, 나도 모르게 뒷면에 살짝 글을 적어봤다.


“나는 다음 세대를 위해 오늘 한 걸음을 뗍니다.”


누가 보지도 않았고, 제출하지도 않았지만, 그 한 문장이 오래 마음속에 남았다.


우리는 늘 바쁘고, 여유가 없고, 일이 쌓여 있다. 그러면서도 더 나은 사회를 꿈꾼다. 하지만 그 꿈을 누가 먼저 꺼내놓고, 누구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런 ‘첫 사람’은, 보고서를 잘 쓰는 사람보다는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일 것이다.


A직원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업무를 처리하면서도, 자기가 만든 실천 캠페인을 진심으로 살아내고 있었다. 분리배출을 꼼꼼히 하고, 사무실에 다회용 텀블러를 들고 다니며, 회의 때 채식 식단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낸다. 어쩌면 그게 ‘진짜 리더’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설득하려 들기보다, 묵묵히 자신의 방향을 살아내는 사람.


돌이켜보면, 내가 A직원에게 배운 건 단순히 환경이나 캠페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태도. 그리고 그 믿음이 주변의 무관심한 마음을 하나씩 감염시키는 조용한 확신.


올해도 푸른발자국 캠페인이 열린다. 나는 ‘총괄’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을 것이다. 여전히 예산표를 들여다보며 걱정할 테고, 일정 조율에 머리를 싸매겠지만, 어느 순간엔 걷고 있을 것이다. 햇볕을 맞으며, 땀을 흘리며, A직원이 그려온 길을 따라.


그렇게 나도, 작은 발자국 하나를 남기려 한다.


A직원처럼, 나도 이제 내 푸른발자국을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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