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조용한 카페의 창가 자리에 앉았다. 햇빛이 커다란 창으로 부드럽게 들어오고, 커피잔 위로 김이 피어올랐다. 해외원조 실태조사 후속 심층 인터뷰가 있는 날이었다. 연구자가 맞은편에, 그리고 내 옆에는 3년째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가 앉아 있었다.
같은 사무실에서 매일 부딪히며 일했지만, 이렇게 해외원조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처음이었다. 평소에는 보고서 작성, 일정 조율, 긴급 대응 같은 당장 눈앞의 일들이 우리 대화를 끊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연구자의 질문은 우리 일을 조금 더 깊은 층위로 끌어올렸다.
“해외현지 파트너 조직과의 파트너십은 보통 어떤 계기로 시작되나요?”
첫 질문에, 나는 우리가 걸어온 길을 한 장면씩 떠올렸다. 선교사의 절박한 전화, 현지 에서 보내온 긴급 요청, 네트워크를 통해 알게 된 이름 모를 마을. 공식 약정이 있는 파트너와 그렇지 않은 파트너의 차이를 이야기하면서, 나는 ‘신뢰’라는 단어를 유난히 또렷하게 발음했다. 문서보다 오래가는 건 신뢰였고, 그 신뢰가 있기에 행정의 빈틈마저도 메울 수 있었다.
‘보조성의 원칙’과 ‘책무성’의 균형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나는 우리 방식이 결코 현지를 통제하려는 게 아니라고, 오히려 그들의 자율성이 살아야 사업이 제대로 숨 쉰다고 말했다. 대신 최소한의 투명성을 지키기 위해 사진, 보고서, 온라인 모니터링 같은 장치를 둔다. 동료도 고개를 끄덕이며, 현지 파트너와 주고받은 영상 메시지 이야기를 덧붙였다.
가장 마음이 움직였던 건 ‘함께 아파하기’에 관한 질문이었다. 긴급구호 현장에서, 혹은 장애 아동을 돌보는 센터에서, 우리는 단순히 물품을 건네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멀리서도 함께 기도하고, 손편지를 보내고, 때로는 화면 속 웃음으로 서로를 안심시킨다. 그 순간의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메시지가, 사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였다.
국내 인식개선 활동이 부족한 이유에 대해서는 솔직히 털어놓았다. 인력이 한정돼 있다 보니 해외 현장 대응이 우선이었고, 세계시민교육이나 미디어 홍보는 늘 뒤로 밀렸다. 동료도 “아쉬움이 크지만, 현실적으로 손이 잘 안 닿는다”고 말했다.
마지막 질문은 앞으로의 역할 분담이었다. 나는 전문기관과 지역교회의 관계를 ‘허브’와 ‘촉진자’로 설명했다. 허브는 기획하고 실행하는 곳, 촉진자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참여를 이끌어내는 곳. 그 구조가 제대로 자리잡을 때, 국내외 연대가 동시에 힘을 얻을 거라고 믿는다.
인터뷰가 끝나자, 커피는 이미 식어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 한켠은 묘하게 따뜻했다. 3년 동안 함께 일하면서도 오늘처럼 깊이 공감한 적이 있었나 싶다. 동료와 나, 그리고 우리가 속한 조직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해외원조라는 길은 길고도 험하지만, 이렇게 서로의 생각이 맞물릴 때, 그 길은 조금 더 단단해진다.
카페를 나서며,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다.
“오늘의 이 대화를, 잊지 말자.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 그리고 누구와 함께 걷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