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가장 어려운 사랑
나는 언젠가 가까운 지인과 크게 다툰 적이 있다. 서로에게 날카로운 말을 쏟아낸 후, 마음속 깊은 곳에 상처가 남았다. 사소한 오해에서 시작된 일이었지만, 자존심이 앞서 쉽게 풀리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그를 떠올릴 때마다 불편한 감정이 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순간이 찾아왔다. 우연히 그 지인이 힘든 상황에 놓였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나는 망설였다. ‘내가 굳이 도와야 하나? 그동안 받은 상처를 생각하면, 모른 척해도 되잖아?’ 그러나 마음 한켠에서 자꾸만 불편한 울림이 있었다. ‘네가 받은 상처만큼, 너도 누군가를 아프게 하지 않았느냐?’라는 내적 목소리였다.
결국 나는 작은 용기를 내어 연락을 했다. “괜찮아?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을까?”라는 짧은 말이었지만, 그 순간 내 마음속 벽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상대방도 잠시 침묵하더니, “고맙다. 사실 네가 제일 먼저 떠올랐어.”라는 대답을 했다. 그날 이후 우리의 관계는 예전보다 더 깊은 신뢰 속에서 회복되었다.
돌이켜보면, 용서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내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안겨준 사람을 향해 손을 내미는 것은, 인간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누구나 복수심이나 억울한 감정을 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마음을 오래 붙들고 있을수록 결국 더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용서는 상대를 위한 선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해방이기도 했다.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단순히 횟수를 세라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무한한 용서의 길을 가르치신 것이다. 인간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그 길은, 결국 하느님의 은총으로만 가능하다.
내가 먼저 내 마음을 내려놓고, ‘ 제가 용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순간, 그때 비로소 나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마음의 상처도 조금씩 치유되는 것을 경험한다.
용서는 단순히 잊는 것도, 억지로 덮어두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먼저 베푸신 사랑을 기억하며, 그 사랑을 다시 흘려보내는 것이다.
사랑의 절정은 바로 용서에 있다. 그래서 용서는 가장 어려운 사랑이지만, 동시에 가장 값진 은총이다. 그리고 그 길을 걸어갈 때,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이 세상 안에서 증거하는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