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by 단호박

내가 일하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천주교 성직자 묘역이 있다.
가끔 그 앞을 지나거나, 시간을 내어 천천히 걸어 들어가 보기도 한다.

그 묘역은 1915년에 조성된 곳이라고 한다. 초대 주교님을 비롯해 여러 세대의 주교와 사제들이 그곳에 잠들어 있다.


처음 그곳을 걸어 들어갔을 때 느꼈던 것은 묘역이라는 사실보다, 묘하게 이국적인 분위기였다. 오래된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묘지의 모습, 중앙에 서 있는 화강암 십자가, 그리고 그 곁에 자리한 성모당까지. 모든 것이 조용하고 엄숙했지만 동시에 이상하게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묘역 입구에는 라틴어 문장이 새겨져 있다.

Hodie Mihi Cras Tibi.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이 말은 위협처럼 들리기보다는 오히려 삶에 대한 담담한 고백처럼 느껴진다.

오늘은 누군가의 자리이지만, 언젠가는 우리 모두의 자리이기도 하다는 것.

결국 인간은 같은 길을 걸어가는 존재라는 사실 말이다.


그 묘역에 잠들어 있는 분들도 한때는 이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사람들을 돌보고, 고민하고, 또 사랑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그분들의 이름은 이제 하나의 묘비로 남아 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결국 타인을 통해 기억되는 존재가 아닐까.

우리가 남기는 것은 거대한 업적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속에 남는 기억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에게는 따뜻한 말 한마디였을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힘들 때 곁에 있어 주었던 한 사람의 얼굴일 것이다.

그래서 삶은 늘 이렇게 이어지는 것 같다.


오늘은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날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일은 내가 누군가의 곁에 서 있는 날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묘역을 나서며 다시 그 문장을 떠올렸다.


삶은 결국 언젠가 끝나지만, 우리가 누군가에게 건넨 마음은 조금 더 오래 남는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서로를 기억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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