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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선택과 집중

2024년 12월 26일 목요일 갑진년 병자월 갑자일 음력 11월 26일

by 단휘

내가 잘 못 하는 것들이다.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도,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도. 하지만 언제나 필요한 무언가로서 다가오는 것들이다. 빠르게 선택할 것을 요구받을 때면 인지 능력이 더 떨어지는 것만 같다. 시간제한이 있다면 내가 대답하지 못할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선택하기는커녕 정서 불안을 야기하여 다른 일상적인 대화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 왜? 글쎄. 나 또한 나에 대해 관찰의 결과로서 알고 있을 뿐, 내면의 메커니즘은 알지 못한다. 그저 지난날들의 나 자신을 보며 통계적으로 파악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선택해야 할 것을 온전히 선택할 수 있는 녀석이었다면 여러 가지로 더 나았을 텐데. 난 항상 그 무엇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다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되곤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늘 겪어 왔으면서도 여전히 그렇게 선택하지 못한다. "이젠 분명히 내가 꼭 가야 할 곳이 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결정하지 못한 채 그저 방황하는 시간의 연속이다. 언젠가 분명 하고 싶은 게 있었던 것 같은데 오랜 시간 속에 어디론가 묻혀 사라지고 흩어져 버렸다.


어찌저찌하여 어떻게든 무언가를 선택했다면 그것에 집중할 줄도 알아야 할 텐데 그게 잘 안 된다. 결국 그렇게 집중하지 못한다면 선택하지 않은 것과 뭐가 다른 걸까. 선택을 한 시늉만 하고 사실은 선택하지 않았던 것 아닐까. 집중하지 못하는 선택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학생 때 공부에 노력을 해본 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차이가 있다더니 그런 것일까 싶기도 하고. 어떻게 집중하고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그게 타고난 것이라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배울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이 짤막한 글 하나 쓰는 데도 몇 번이나 주의가 흐트러지고 있으니 말이다.


때로는 정말 더 안 바라니까 남들만큼만 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학생들의 수업 시간은 그 나이대 학생들이 집중할 수 있는 일반적인 시간을 기준으로 정해졌다던데, 살면서 단 한 번도 그 시간만큼을 무언가에 온전히 집중해 본 기억이 없다. 게임을 할 때마저도 시나리오 하나를 온전히 집중해서 플레이하지 못하고 쉬엄쉬엄 하는 것 같다. 20분짜리 애니메이션조차 쉽지 않다. 한두 편 정도는 중간중간 놓쳐 가며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쫓아갈 수 있는데, 그 이상을 연속으로 보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몇 편을 연속으로 보느라 놓친 부분이 너무 많은 《트윈 픽스》 시리즈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천천히 다시 보고 싶기도 하고.


요즘은 어떤 선택을 하면 좋을지에 대한 혼란이 커졌다. 모든 게 다 불확실함투성이다. 내 정체성조차 명확하지가 않다. '어떠어떠한 나'가 아니라 그냥 '나'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난 그 '어떠어떠한' 타이틀 한두 개쯤은 갖고 싶다. 구체적인 목표는 없지만 막연하게 무언가 갖고 싶을 뿐이다. 사회적으로는 이미 그것을 찾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취급받는 나이대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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