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산책
2024년 12월 27일 금요일 갑진년 병자월 을축일 음력 11월 27일
가벼운 산책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꽤나 괜찮은 것 같다. 걸으면서 신체를 활성화하고, 때로는 어떤 생각에 잠겨 거리를 거니는 시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 아침에 일어나서 화면 앞에 앉아 정적인 활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거리를 거닐면서 했던 생각의 연장선을 끄적여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적당히 거닐다가 괜찮은 카페에 들어가 글을 쓰는 삶은 어떨까. 매일 아침마다 커피 (혹은 다른 음료) 한 잔씩 마시며 구석 자리에서 무언가 끄적이다 가는 녀석이라던가. 시끄러운 음악이 틀어져 있는 곳은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분위기는 학림다방이 가장 좋았다. 따뜻한 생강라떼 한 잔 마시면서, 노트북보다는 종이에 써 내려가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적당한 노트에 만년필로 써내려 가는 글귀들. 그런 감성 참 좋아하는데 살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서 멀어져 있다.
정기적인 수입이 생긴다면 기프티콘이나 쓰러 가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아닌, 좀 더 괜찮은 카페의 단골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산책 겸 걸어갈 수 있는,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에, 시끄럽지 않고 한두 시간 무언가 끄적이다 올 수 있을 만한 공간. 걸어서 이십 분에서 삼십 분 정도의 거리면 적당할 것 같다. 주거지와 생활권은 분리하고 싶기도 하고, 너무 가까우면 그 정도 거리 나갈 바에야 안 나갈 것 같기도 하다. 그저 카페에 가는 게 아니라 산책의 연장선 같은 느낌이 딱 좋은 것 같다. 아침마다 비슷한 시간대에 같은 카페에서 같은 메뉴를 주문하는 녀석이라던가. 아니면 저녁마다 비슷한 시간대에 같은 칵테일바에서 같은 메뉴를 주문하는 녀석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바에 들어가자마자 블랙러시안 한 잔 만들기 시작하는 주인장을 보고 싶기도 하고?)
사실 꼭 아침이 아니더라도 산책은 어느 때나 옳다. 저녁에 친구를 만나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거리를 거니는 것도 좋다.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 때로는 말없이 그저 그렇게 나란히 걸어가기도 한다. 어떤 대화를 나누더라도, 혹은 말없이 거닐더라도 그렇게 함께 하는 시간이 좋다. 혼자 걸을 때랑은 또 다른 느낌으로 꽤나 괜찮은 기분이다.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데에서 오는 기쁨일까.
왠지 난 실내보다 야외가 더 좋은 것 같기도 하다. 지원사업에서 만난 청년 분들과 사적인 시간을 가질 때도 카페보다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좋았다. 물론 걷기 힘들어하거나 날씨를 못 견뎌하는 사람이 꼭 있어서 결국엔 어디론가 들어가야만 했지만. 그런 성향 차이에 의해 결국에는 주변에 싸돌아 다니는 데 거부감 없는 녀석들만 남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어딘가를 거닐 때 난 나랑 비슷하거나 체력이 더 좋은 사람을 선호한다. 어느 정도 차이 나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적어도 너무 금방 지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