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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독립성

2024년 1월 2일 목요일 갑진년 병자월 신미일 음력 12월 3일

by 단휘

나의 가족 중 절반이 오늘 새벽에 해외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을 어제 오후에 전해 들었다. 그들이 떠나기까지 24시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그리고 나의 즉흥성이 어디서 유전되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내가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지 두어 시간 후에 그들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새벽에 떠나기 때문에 어젯밤에 지하철 막차로 미리 이동하여 라운지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하였으니 결국 여행 당일에 짐을 싸는 꼴이다. 나야 뭐, 그런가 보다 하며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지만. 확실히, 가족에 대한 정서적 독립성은 꽤나 강한 편인 것 같다.


그들은 나의 형제가 중고 거래를 하러 나간 사이에 집을 나섰다. 늘 그랬듯, 별다른 배웅 없는 집을 뒤로하고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집에 사람이 반으로 줄어들고 나니 심리적으로 좀 더 편한 느낌이다. 방문을 열어 놓아도 무방할 정도로 말이다. 생활 소음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적막함. 나는 이른 아침에 하루를 시작할 때에는 이런 환경이 좋다. 이후에는 누굴 만나 어떤 환경에서 생활을 하든 대체적으로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하루를 시작하는 시점에는 말이다. 하지만 평소에는 그런 시간을 충분히 갖기 전에 누군가 내 방에 관심을 끌러 오는 경향이 있다.


마음 같아서는 어딘가로 나가 살고 싶지만 집값이 그것을 허락해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냥 어딘가에 얹혀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니, 기껏해야 한 달 살기 이상으로는 떠나 있기 쉽지 않다. 다른 어딘가에 가도 그 특정 지역에서의 주거가 안정되어 있지 않으니 수익 활동을 해나가기도 애매하고, 여러 모로 쉽지 않다. 그리고 내 모든 것을 가지고 이동할 수는 없느니 소소한 인간관계부터 이것저것 다양한 것들을 포기하고 새로 구축해 나가야 한다. 이곳에 뿌리내린 게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는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작년 언젠가부터 마냥 그렇게 쉽게 떠나지 못하는 녀석이 되어 버렸다.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따뜻한 남쪽 동네에서 살고 싶은데 말이다. 따끈따끈의 도시 대구라던가 (언젠가 여름의 대구에서 일주일 정도 머문 적 있었는데, 그럭저럭 살 만하고 느꼈다) 웨이브락의 도시 부산이라던가 (물론 그것 말고도 이것저것 있지만 그렇게 주장하곤 한다) 적당히 인프라도 갖췄으면서 서울만큼 복잡하지 않은 광역시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최근에는 부산에 금방 갈 수 있는 김해 같은 주변 도시나, 아니면 서울에서 적당히 떨어진 경기권 정도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출판의 도시 파주...는 너무 춥다고 들었던 것 같고. 하여간 그런 건 본격적으로 어딘가로 떠날 준비를 할 때 제대로 알아보겠지만 말이다.


하여간 사람에 대한 독립성과 의존성이 둘 다 높은 미묘한 녀석인 것 같다. 가족이나 일반적인 지인에 대해서는 독립성이 강하게 나타나지만, 친밀한 지인을 넘어 친구에 도달한 관계에서는 의존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느낌이다. 어쩌면 가족에게서 받아야 할 무언가를 가족을 차단하고 친구에게서 얻으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생각해 보면 썩 좋은 현상은 아닌 것 같긴 한데 말이다. 때로는 친구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려고 하는 걸 표출되지 않도록 애쓰기도 하고, 기분이 안 좋아 보이거나 응답이 없으면 유기불안 같은 걸 느끼기도 하고. 애인도 아니고 '친구' 관계에 접어든 그 모든 이들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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