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1일 토요일 갑진년 정축월 경진일 음력 12월 12일
세상에는 계획을 잘 세우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만큼, 계획이 틀어졌을 때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에 대해서도 개인차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은 계획을 얼마나 세우고 사느냐와는 별개의 방향이라고. 계획을 잘 세우며 그것이 흐트러지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계획은 잘 세우는데 그것이 흐트러져도 그럴 수 있지, 하며 다른 대안을 쉽게 꺼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계획을 잘 세우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런 이야기를 잘 안 하는데, 아무래도 애초에 흐트러질 계획이 없는데 무엇을 논하냐는 인식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어느 쪽이냐고 하면 계획이 틀어졌을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다. 대체로 즉흥적으로 살아가는 녀석이라 주변에서 들으면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난 굳이 따지자면 계획이 틀어질 때 받는 스트레스에 대한 거부감이 너무 커서 틀어질 계획 자체를 안 만드는 경향이 있다. 계획을 잡더라도 러프한 수준으로 잡는다. 가령 "아침 6시에 브런치에 새 글을 작성하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하면 6시 반에 일어났을 때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지만, "아침 6시를 원칙으로 하되, 언제라도 일어나면 그 일어난 시간을 내 하루의 시작으로 보고 적당히 새 글을 작성한다"고 하면 늦잠을 잤을 때 받는 스트레스가 덜하다.
그래도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약속은 조금 더 명확한 계획으로 남겨 둬야지, 하고는 있지만 그리 잘 되지는 않는 것 같다. "대충 저녁때쯤 만나자" 해놓고 당일 오후에 되어서야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일도 전혀 낯설지 않은 상황이다. 심지어는 "만나자"도 아니고 "만날까" 정도의 수준에서 대화가 마무리된 후 당일에 만남이 확정되는 경우도 있다. 대충 비슷한 걸 지역 밈으로 본 적 있는데, "뭐야, 또 충청도민 특이야?" 싶더라. 분명 서울에 산 지 이제 20년이 넘었는데 내재되어 있는 충청도 바이브가 존재하는 걸까.
대체로 계획을 양자 상태로 두는 것 같다. 무언가를 하기로 하면 그 시간에 그것을 할 확률이 높은 거지, 완전히 확실한 것은 아닌 느낌. 친구와의 약속도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가 정해진 시점에야 100%의 약속으로 취급하지만, 어느 정도의 가능성이 있는 것들은 나의 스케줄로 적어 놓긴 한다. 단지 그것이 확정이라고 생각하면 변동 시 받는 스트레스가 크기에 스스로에게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나는 가능성이 생긴 일정을 구글 캘린더에 적어두고 당일 아침이나 전날 저녁에 종이 다이어리에 러프한 하루 계획을 세우는 편인데, 그 시점까지 확정되지 않은 일정에 대해서는 "높은 확률로 이것, 그러나 불발 시 저것" 하는 형태로 작성된다. 다른 사람과의 약속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일정도 "이 시간대에는 이것 또는 저것" 하는 식으로 불확실하게 적혀 있는 게 많다. 애초에 시간부터가 "몇 시부터 몇 시"로 딱 떨어지지 않고 그저 "대충 이 시간대"로 설정되어 있다.
대략적인 러프한 계획 정도가 나에게 적당한 것 같다. 아무 계획이 없으면 내가 뭘 하면 좋을지 인지가 잘 되지 않아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살 수도 있다.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으로서의 일정표가 필요하다. 루틴화된 일상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면 그런 것 없이도 그 루틴을 살아갈 수 있겠지만 말이다. 불확실성과 변동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수준의 계획으로 살아가니, 이게 계획적으로 사는 건지 즉흥적으로 사는 건지 그 스펙트럼의 중간 어드매 존재하는 것 같다. 이러니 누가 나에게 계획적인 편이냐고 물어보면 "대...충?" 하고 애매하게 대답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