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25 동기 부여

2025년 1월 23일 목요일 갑진년 정축월 임진일 음력 12월 24일

by 단휘

여러 검사들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특징 중 하나가 빈약한 동기 부여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나를 행동하게 만드는 일은 쉽지 않은 것으로 취급되어 왔던 것 같다. 어린 날의 일화라고 전해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 중 하나로, 초등학생 때 타의적으로 오카리나 강습을 받은 때의 이야기가 있다. 연습을 안 하고 있어서 왜 안 하냐고 물어보니 몰라서 못한다고 대답하고, 가르쳐 줬는데 또 안 하고 있어서 다시 물어보니 이제 알아서 연습 안 해도 된다고 대답했다나.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주변에서 아무리 하라고 해도 이 모양이다.


학습적인 측면에서도 나의 형제는 시키면 잘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던 반면 나는 시킨다고 할 놈이 아니었기에 스스로 흥미를 느끼거나 필요성을 깨닫기 전까지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잘 안 했다고 하더라. 그래서인지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했던 기억은 없다.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 입시까지 흔히 겪는다는 학업 스트레스도 딱히 받아본 적 없는 것 같다. 엄청나게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는 요구사항을 가지지 않은 가정환경이기도 했고, 그냥 흥미를 느끼는 만큼만 공부해도 중상위권 정도는 나왔다. 나는 늘 관심 가는 만큼만 공부를 할 뿐, 무언가를 열심히 노력해서 공부해 본 적이 없는데, 학생 때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어떤 성적이 나왔을까 궁금하다가도, 역시 난 그 '열심히'라는 걸 할 것 같지가 않다.


결국 '열심히 해야 한다'는 사실은 나를 움직이지 못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나의 흥미를 끌어야 나를 움직일 수 있다. 내 흥미를 끄는 데 성공한다면 그것이 미끼인 걸 알면서도 넘어가는 단순한 녀석인데, 다만 그 흥밋거리를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가 관건이다. 고등학생 때 유정이라는 동급생 녀석은 나를 입시 공부 시킨다는 명목 하에 당시 내가 흥미를 느끼던 현이라는 아이의 중학교 때 사진이 있는 졸업앨범 대여를 미끼로 걸었고, 그것은 꽤나 효과 있었다. 먹을 거에는 잘 안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소소한 한입거리 말고 어느 정도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에는 넘어가더라. 뭐에 넘어가고 뭐에 안 넘어가는지 파악한다면 나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아주 드물게 존재 자체로 나에게 흥밋거리로 작용하는 사람이 있다. 재작년 청년이음센터 성북센터의 운동 동아리 담당 복지사 님이 그러했다. 불편한 사람이 있다면 안 만나버리는 내가 불편한 사람이 있어도 그 모임에 갔던 것은 오로지 그 복지사 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너무 특정 개인에게 매몰되는 것도 좋지는 않은 것 같아 작년에는 흥미를 끄는 존재가 있어도 그 영향을 과하게 받지는 않으려고 의식하며 지내기도 했다. 괜히 '님이 있다고 내가 모임에 다 나가는 건 아니거든요' 하는 반발심이 발동해서 시간도 되고 흥미도 있으며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전혀 무리가 없지만 아무 이유 없이 안 간 모임도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럴 것까지는 없었는데 말이다.


내 삶에 있어서 장기적인 동기부여로 쓸 만한 흥밋거리가 있으려나. 역시 그때 그때 시의적절한 무언가를 찾아야 할 것 같기도 하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24 리본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