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27 명절

2025년 1월 25일 토요일 갑진년 정축월 갑오일 음력 12월 26일

by 단휘

명절 연휴라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지만 괜히 더 거부감이 든다. 갈 수 있던 곳들이 연휴라는 이유만으로 문을 닫아서일까. 빠르면 어제 오후부터 다들 어디론가 이동한다. 주말 중에 적당히 이동하려는 사람들도 있고, 금요일 퇴근시간부터 대체공휴일인 월요일까지 어느 정도 퍼져 있겠지. 물론 나는 해당사항 없는 일이다. 명절이라고 해서 어딘가에 가지는 않는다. 가던 때도 있었는데, 글쎄. 다 지난 일이다.


어릴 땐 친척들이 많이 모였던 것 같다. 외가 쪽에는 우리 세대가 나까지 총 열 명. 5남매가 자녀를 둘씩 가졌는데, 사촌들 여덟 명은 나이대가 비슷하지만 나와 나의 형제만 동떨어져 있다. 사촌들의 나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다. 친가 쪽에는 우리 세대가 나까지 총 세 명, 그러니까 나와 나의 형제를 제외하고 단 한 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한 명의 나이도 모르고 있었는데 작년에 고3이라고 하였으니 이제 막 성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여간 친척들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이름조차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길에서 우연히 사촌을 마주친다면 분명 못 알아보고 지나칠 것이다.


초등학생 때는 외가에서 김장도 하고 친가에서 차례와 제사도 지내고 하며 명절이나 그 외 여러 상황에 모이곤 했다. 김장을 안 하게 된 게 언제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중고생 때쯤부터는 그런 가족 행사에 불참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친가에 차례를 지내러 가도 3남매 중 우리 가족만 오고 아빠의 동생들은 불참하는 일이 많았고, 외가 쪽도 제사 때나 모였지 다른 모든 가족 행사가 사라졌다. 이제 와서는 그런 모임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조차 모르겠지만.


옛날에야 평소에 연락하고 지내기 어려우니 명절 때 모여서 근황도 이야기하고 나눌 거 나누고 하는 시간이 되었겠지만 요즘 세상에는 언제라도 상호작용할 수 있는데 명절이라는 게 의미가 있나 싶을 때도 있다. 더 이상 사람들이 한복을 입지 않는 것처럼 (물론 생활한복을 입는 사람도 있고 나도 그걸 좋아하기는 하지만) 언젠가의 전통문화로 사라질 법도 한데 말이다. 각자도생 하는 요즘 세상에 이런 때 아니면 온 가족이 모이겠냐는 입장도 있는 모양이지만. 애초에 온 가족이 모이지 않고 자꾸 불참자가 두어 가족씩 생기니까 회의감이 드는 것일 수도 있고.


그래도 이전에는 당일치기 몇 시간이라도 명절 가족 행사가 있었는데, 조부모님들 모두 돌아가신 후로는 이제 아무 일정이 없다. 그렇다고 평소처럼 지내기에는 평소에 가던 곳은 명절 연휴라고 문을 닫는다. 그래도 이번 주말까지는 어느 정도 밖에서 평소처럼 지낼 수 있지만 대체공휴일인 월요일부터는 보다 본격적인 연휴 분위기겠지. 이미 어디론가 가버리고 문을 닫은 곳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하여간 명절이 주는 의미를 잘 모르겠다. 누군가는 친척들을 만나 잔소리 듣는 게 싫다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오랜만에 가족들이랑 편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다고 하고 (어떻게 하면 그게 편한 시간일 수 있는 거지? 일 시키거나 잔소리하거나 하지 않는다고?) 각자의 환경에 따라 제각각의 명절을 보내겠지. 어쩌면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친척을 만나야 하는 게 아니라는 점만으로 감사한 일일 수도 있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26 사고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