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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휘 Sep 21. 2024

#19 여름

2024년 9월 21일 토요일 갑진년 계유월 무자일 음력 8월 19일

기본적으로 난 추운 것보다 더운 것을 더 선호한다. 더운 게 왜 좋냐고 묻는다면, 좋아하는 게 아니다. 더울 땐 땀을 삐질삐질 흘릴 뿐이지만 추울 땐 일상생활이 안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추울 땐 몸이 떨릴 뿐이지만 더울 땐 일상생활이 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 가끔 이런 개인적 선호를 가지고 내 말이 맞네, 네 말이 틀리네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자기중심적 사고 밖에 되지 않는 철없는 꼬맹이들이나 그런 소리를 하는 줄 알았는데 다 큰 성인 중에도 그러는 사람이 있더라.


하여간 추위 내성 부족으로 인한 더위 선호로 난 겨울보다는 여름을 선호하는 편이다. 다만, 여기에는 에어컨이라는 커다란 변수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집에서 에어컨 없는 삶을 살고 있는데, (거실에 있는 에어컨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사각지대라,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여름날 가족들은 내 방에 오면 후덥지근하다고 말을 하곤 한다) 밖에 나가면 아무래도 실내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에어컨이 있다.


에어컨의 온도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그 온도라고 해봤자 봄가을에 접하는 수준의 온도 아닌가. 문제는 온도 그 자체보다는 온도차인 것 같다. 바깥과의 온도차. 더운 날씨에 익숙해져 있는 신체가 갑작스러운 저온을 못 견디는 것이다.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해도 신체가 느끼는 갑작스러움은 또 별개의 문제다 보니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덕분에 에어컨이 세게 틀어져 있으면 체해서 제대로 식사도 할 수 없는 녀석이 되어 버렸다. 같은 이유로 겨울의 히터도 썩 좋아하지는 않는데, 그래도 추위 내성이 떨어지다 보니 히터의 도움을 받을 때도 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더위 내성 부족으로 에어컨의 도움을 받고 있을 테니, 웬만큼 에어컨이 세도 도저히 아니다 싶을 때까지는 견뎌 보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적당히 따뜻한 여름날, 따끈따끈한 햇살 받으며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햇살을 받다 보면 피부가 타는데, 이게 또 딜레마다. 난 알레르기적인 이유로 선크림을 바르지 못한다. 적당히 가족이 쓰던 제품을 사용했을 때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부어올라서 안 쓰게 되었다. 이후 성인이 되었을 때 순한 제품이라고 소개받은 선크림을 사용해 봤는데,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 얼굴은 선크림을 바르고 몇 분 동안 후끈거리는 감각이 떠나지 않는다. 순한 제품이랬는데. 몸에는 아무 이상 없다는 점에서 다른 제품을 소개받아도 괜찮은 제품인지 팔에다가 먼저 테스트해보고 판단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 같다.


흐여멀건한 피부보다는 구릿빛 피부를 선호하는 개인 취향으로 인해 피부가 타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은 없지만, 피부 건강 차원에서는 썩 좋지 못한 일이다. 그래서 선크림이 아닌 방식으로 자외선을 차단해야 하는데, 작년까지는 여름에도 긴팔 긴바지를 입고 다니는 때가 많았으나 이번 여름은 그럴 수 있는 날씨가 아니었다. 여름 내내 남들보다 더위로 인한 고통을 덜 받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남들은 이미 반팔 반바지를 입고 다녔어서 더 줄일 것도 없었지만 나는 기존 여름보다 시원한 차림이 가능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여간 양산이라도 쓰고 다녀볼까 싶다가도 습관이 잘 들지 않더라. 어디선가 받은 3단 양우산을 사용해 봤는데 역시 난 3단 우산보다는 2단 우산이 좋아서 조만간 튼튼한 2단 양우산을 찾아봐야지, 하고 언젠가의 미래로 미루는 사이에 여름이 지나가 버렸다. 여름이 지나갔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곳의 현재 온도는 17도, 어젯밤에는 18도였고, 난 어젯밤에 두꺼운 이불을 꺼내 왔다. ...추분 가까이 와서야 가을이 오는 게 말이 되나 싶긴 하지만. 게다가 지역에 따라 아직도 20도 후반인 곳도 있다고는 하더라. 여름이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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