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지개센터 청년플랜브릿지 3기 개인밀착 6차시
마지막 반차를 사용하고 센터에 왔다. 왜인지 평소보다 늦게 도착한 느낌. 평소에는 30분 조금 넘게 여유가 있었는데 오늘은 20분 정도밖에 여유가 없었다. 분명 평소랑 비슷하게 온 것 같은데 왜일까. 하여간 적당히 커피머신에서 마실 것도 보충하고 적당히 올라가서 상담실 앞 소파에 늘어져 있었다. 그러고 있었더니 매니저 님이 오셔서는 피곤해 보인다고 하시더라. 그럴 만한 게, 주말이 없는 삶을 살고 왔으니 피로가 많이 누적되어 있을 것이다. 일자리 사업과 주말 알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이번 주 개인밀착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나는 멀리 이동하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지하철을 타고 서쪽 멀리 은평구까지 가는 것은 그래도 할 만한데 고속버스나 KTX 같은 건 긴장과 불안이 앞선다. 그런 현상은 인지하고 있었는데 그 구체적인 원인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매니저 님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딜 가나 어느 정도 비슷한 느낌이 드는 지하철 역 플랫폼과는 달리 낯선 곳이라는 느낌에서 오는 긴장감이 있는 것 같다는 걸 인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놓치면 다음 열차를 타면 되는 지하철과는 달리 고속버스나 KTX는 놓치면 다시 예매해야 하고, 배차 간격도 길고, 경우에 따라서는 다음 것을 탈 수 없을 수도 있다. 시간 맞춰 가야 하는 것에 대한 위험부담이 커서 “늦으면 안 되는데”에 대한 불안이 올라오는 것 같다. 기록을 남길 땐 명확한 감정과 원인을 파악하지 못해도 나중에 다시 읽으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인지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걸 반복하다 보면 좀 더 즉각적으로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겠지.
일자리 사업 출장도 가고 주말까지 자유롭지 못한 일정이 차 있는 바람에 지난주에는 책을 읽을 시간이 많지 않았다. 목금토일은 도저히 읽을 정신이 아니었지만, 월화수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며 메모를 남겼다. 일주일의 절반은 책을 읽지 못하고 지낸 만큼 독서량은 줄었지만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고, 월화수에는 목표한 바와 같이 생각을 정리해 가며 책을 읽었기에 그것에 대해서는 목표 달성을 주장하며 2점을 부여했다.
감정일기도 딱 목표만큼만 수행했다. 매주 얼마나 썼는지 체크하지 않고 쓸 거 있을 때만 쓰다가 개인밀착 프로그램이 진행될 때 개수를 세곤 하는데, 4개의 기록을 남겼더라. 목금토일 동안 정신이 없으니 많이 못 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목요일과 금요일에 쓸 말이 있었다. 하나는 고속버스를 타고 멀리 이동하는 것에 대한 갱갱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지방 출장 가 있는 사이에 받게 된 연락에 대한 것이었다. 후자의 경우 지금까지 썼던 감정일기 중 가장 긴 분량으로, 평균적인 길이의 세 배 정도 작성했다. 그만큼 불쾌했던 기억이다. 그리고 월요일에는 센터에 대한 아쉬움을 적었고, 화요일에는 또 다른 곳의 운영에 대한 아쉬움을 적었다. 확실히 긍정적인 감정의 기록이 적다. 지난번에 누군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느꼈던 뿌듯함과 계획에도 없던 친구와의 만남에 대한 신남 정도가 전부인 듯.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질 때 그것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에 끄적이기 때문에 그런 내용이 많이 남는 걸까. 긍정적인 감정은 기록으로 남기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즐기느라 기록이 누락되고 말이다.
한 청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매니저 님은 그 청년을 만나본 적 없지만 이름은 많이 들어봤다고 한다. 매니저 님들 사이에서도 다른 청년 분과의 면담에서도 종종 나오던 이름인 모양이다. 듣자 하니 청년플랜브릿지 2기 때 내 담당 매니저 님이 맡았던 청년 분들 중 한 명하고도 가까운 사이였는데 안 좋게 끝났다나. 여러 가지로 센터 청년 분들과 부정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지 않을 수 있는 관계에서마저도 스스로 부정적인 관계를 자초하는 것 같다. 누군가를 모함하고 험담하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듯하고 여러 모로 문제 행동을 많이 보였다더라. 언젠가 자신의 언행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개선하고자 할 수도 있지만 아직은 그 단계까지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나.
그 청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건 나의 감정일기 때문이었다. 평소보다 유독 긴 분량의 무언가. 상당히 불쾌했던 기억. 다시 생각해 봐도 부정적인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하지만 부정적인 마음으로 대처하지는 않기로 했다. 이런 일이 있었다 하는 이야기를 몇몇 청년 분들하고도 대화를 나눴다. 말로 전달하면 내 감정으로 인한 편향이 있을 수 있어 연락받았던 내용의 스크린샷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한 청년은 그에 대해 타인에 대한 미움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고 했다. 확실히 그는 타인을 비난하며 그 비난을 들어주고 동조하거나 위로해 주는 사람만을 곁에 두려는 경향이 있다. 다른 청년은 센터에 얘기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 하지만 센터에서 발생한 일도 아니고 단지 참여 청년이 다른 참여 청년에 대한 모함을 하는 것에 대해 센터가 뭘 할 수 있지? 격리 조치? 하지만 애초에 격리되어 있고 남이라고 볼 수 있는 사이다. 난 아직도 그가 왜 날 걸고넘어지는지 모르겠다. 이름 말고는 아는 것도 없는 청년으로부터 있지도 않은 일로 비난받는 것에 대하여….
일단 그 청년에 대해서는 그대로 두기로 했다. 거기에 맞서봤자 있지도 않은 일을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논리 따윈 통하지 않을 거고, 서로 감정만 상할 게 분명하다. 설령 그가 더 이상 나를 타깃으로 삼지 않게 된다고 해도 이번에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인가’하고 주변에 물어본 결과 ‘원래 저런 사람이구나’를 알게 된 것처럼, 앞으로도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타깃 삼아 모함과 비난을 이어갈 게 분명하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고 나를 색안경 끼고 보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뭐 어쩔 수 없는 거지. 나와 잘 지내볼 의향이 있는 사람들은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나에게 물어볼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연이 아니었던 거다.
사실 비슷한 사례가 몇 년 전에 있었다. 어느 정도의 사회적 고립감은 있지만 그냥저냥 살아갈 만하던 수준의 나로 하여금 세상을 제대로 등지게 만든 사람. 인간불신을 야기한 존재. 난 그와 만나기로 한 날 아침에 장문의 비난과 함께 차단당했다. 난 그 사람뿐만 아니라 함께 아는 사이인 사람들까지도 상호작용하기 싫어졌다. 그런데 며칠인가 지난 후에 함께 아는 사이인 사람들 중 한 명에게 잘 지내냐고 연락이 왔다. 나를 차단한 사람이 나에 대해 부정적인 소리를 해서 이 사람도 나에게 비난을 퍼부으려 하나 경계하며 응답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들었던 건 사실이고 또 그 말을 믿었다고는 하더라. 다만, 그 이후 그 사람이 커뮤니티 내에서도 분탕질을 하고 완전히 파탄 낸 후에 커뮤니티를 나갔다고. 그런 상황을 겪은 후에야 그 사람이 나에 대해 했던 말도 사실은 모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연락을 해 보았다는 거였다. 결국 모두를 비난하고 부정적인 관계를 만드는 사람은 혼자 고립되게 되어 있다. 마음가짐을 고쳐먹기 전까지는 말이다.
타인에 대한 비난을 통해 자존감을 채우는 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주변 청년 분들하고도 이와 관련하여 대화를 나누었다는 이야기를 하였을 때, 매니저 님은 나에게 주변에 좋은 친구가 많은 것 같다고 하셨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생각해 주는 이들. 모두 센터에서 만난 서울 동북권 생활권자들이다. 센터 청년들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니, 센터 청년들 중에는 그런 영향을 주려고 하기보다는 받고 싶어 하는 청년이 많다고 하시더라. 생각해 보면 우리도 다들 그랬다. 지원사업 초기에는 상호작용에서의 시행착오도 많이 거쳤고,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는 마음도 컸다. 하지만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었고, 이제는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개인밀착 프로그램을 마치고 1층에 내려왔을 때 주방에서 익숙한 청년 분들이 대화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는 청년 한 명, 종종 본 것 같은데 잘은 모르겠는 청년 한 명, 그리고 낯선 청년 한 명. 원래 스낵바만 이용하고 책방 쪽으로 이동하려고 했는데 흥미로운 대화를 하고 있길래 책방 쪽에 둔 가방과 외투를 챙겨 주방으로 완전히 옮겨 왔다. 다양한 대화를 나눴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낯선 조합의 상호작용이었지만 경계심이나 긴장감이 생기진 않았다. 어쩌면 탈고립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진 것 아닐까 싶다.
다이어리에 대한 이야기, 만년필에 대한 이야기, 책에 대한 이야기, 출판사에 대한 이야기 등등. 그리고 얼마 전에 지원할까 하다가 말았던 모닝페이퍼 동아리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서 그것도 지원해 버렸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은 것. 종종 본 것 같은데 잘은 모르겠다던 청년 분은 내가 그 모닝페이퍼 동아리를 알게 된 독서모임에서 뵌 것 같다. 공모전 출품작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재밌었다. 공모전 참가자가 100명이 넘는다는 이야기는 여담. 난 이렇게 우연한 만남에서 비롯된 대화가 좋더라. 판타지 세계관이었다면 난 늘 여관 1층의 주점에서 여가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