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지개센터 청년플랜브릿지 3기 개인밀착 4차시
아무래도 난 능소니가 되고 싶다. 인간 사회를 살아가는 것도 너무 힘들고 어른으로 살아가는 것도 너무 힘들다. 난 왜 곰탱이도 꼬맹이도 아닌 인간 성체로 존재해야만 하는가. 10대 중후반에 세상을 등지며 멈추었던 나의 시간은 20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조금씩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세상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기에 나는 10대 중후반이 아닌 20대 중후반으로서 삶을 이어나가야 한다. 그 10년의 간극을 메우는 것. 그게 핵심인 것 같다.
그렇다면 10대 중후반이 되기 전까진 잘 살았느냐. 글쎄, 그렇진 않았던 것 같다. 주관이 없는 삶을 살아왔다. 살면서 처음으로 내 의지로 무언가를 하게 된 게 고등학교 3학년 때 뮤지컬을 보러 간 것이었고, 두 번째가 20대 초반의 연기스터디였으며, 그다음이 고립은둔청년 지원사업을 신청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 외의 것들은 누군가의 권유에 한 번 해본 거거나, 순간의 충동으로 신청했을 뿐이다. 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잘 알지 못한다. 이제 막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순간적인 거 말고 지속적인 삶의 의욕은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까.
부족한 자기 이해, 억눌린 채 통제되지 않는 감정들, 위태로운 경계선에 존재하는 심리 상태. 덮어두고 지낼 때는 그럭저럭 살아갔지만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문제였다.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나니 툭 치면 넘쳐흐를 듯한 감정들이 뒤섞인 채 쌓여 있다. 묻어두기보다는 해소해야 할 것들인데, 직면과 해소 사이의 과도기라 많이 불안정한 것 같다. 주변 엄한 사람에게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 지나치게 표출되지 않게 조심해야 할 텐데. 이미 벌어질 일은 벌어진 것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룹밀착 프로그램에서 신고은 강사님은 개인마다 주 감정이 있어 다른 감정도 그 감정으로 표현되곤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문제 상황에 대해 억울함을 주로 호소하고, 또 누군가는 주로 분노하고, 그런 식이다. 나는 많은 것들이 불안으로 표현되는 것 같다. 특히 청각 자극으로 인해 놀랐을 때 놀람이 불안으로 전환되는 게 크다. 평온한 상태로 돌아오는 데 오래 걸리고, 심하면 한참 동안이나 불안이 기저에 깔려 있다가 자고 일어난 후 다음날이 되어서야 회복되기도 한다. 심리적으로 좋지 못할 땐 며칠 가기도 했던 것 같다. 어떤 사건이 있던 것도 아니고 단순한 청각적 자극만으로 말이다.
개인밀착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날마다 거의 항상 울다 나오는 것도 이와 관련 있는 것 같다. 평소에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의 도트 대미지도 심리 상태에 따라 유의미한 지속 대미지로 오기도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고음의 여성 목소리를 조금 힘들어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게 생각보다 지속적으로 도트 대미지가 쌓이는 게 있더라. 대화를 하는 내내 쌓인다. 큰 소리로 꽂힐수록 더 심하다. 괜찮은 심리 상태일 땐 무시할 수 있는 정도의 대미지인 것 같은데 그래도 대미지를 안 받는 건 아닌 것 같다. 내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수면 위로 올려놓으려고 하는 상태로 대화하다 보니 꽁꽁 싸맨 상태가 아니라 날 것 그대로에 대미지가 들어와 그런 대미지에 대한 방어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글쎄, 그걸 찾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저 살아남는 것 이상의 무언가 말이다. 남들에게 최대한 피해를 안 주고 죽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하다가 언젠가 적당히 사고라도 당할 날만을 기다리며 관성적으로 살아가던 때와는 뭐가 다른가.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라도 드러낼,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할 만한 곳이라도 생겼다는 것만 달라지고 내 삶의 태도는 그다지 변한 게 없는 것만 같다.
느긋하고 유유자적한 것을 선호하는 나의 성향은 보통의 사회와 결이 맞지 않는다. 이 때, 사회에 나를 맞추려 노력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를 나에게 맞출 수 있는 환경을 찾을 것인가. 정답은 없다고 한다. 나는 이왕이면 보통의 사회에 편입되고 싶다. 남들 같은, 보통의 청년. 월요일이 싫다고 퇴사하고 싶다고 꿍얼거리면서도 자신이 맡은 바를 충실히 해 나가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렵다. 빠릿빠릿하게 일을 해 나가는 것도 너무 힘든 일이고, 너무 벅차다. 도저히 해낼 자신이 없다. 사회초년생으로서의 일시적인 현상인지 직장인으로서 겪게 되는 만성적인 이슈인지조차 모르겠다.
아무런 노력 없이 보통 사회에 편입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얼만큼의 노력이 필요한 지 알 수 없는 이 막연한 장벽 앞에 난 도망치고 싶다. 그렇게 도망쳐서 내린 선택이 과연 좋은 선택일까. 하기로 한 것에 대해 생각이 끼어들면 안 할 이유를 찾는다며 바로 해버리라고 하던데, 삶에 대해서도 생각할수록 안 살 이유를 찾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관성적으로만 살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지금까지는 그렇게 관성적으로 버텨 왔다. 하지만 그건 살아온 게 아니라 죽지 않고 버텨온 것일 뿐이다.
출근이 있는 삶을 꿈꿨다. 돈을 벌려고 일을 한다기보다는 일을 하는 김에 돈을 버는, 규칙적인 출퇴근이 있는 삶. 왜? 글쎄. 꼭 그런 삶이어야 의미 있는 건 아닐 텐데. 그냥 그런 체계적인 삶이 멋있어 보였던 것 같다. 난 멋있는 녀석이고 싶었다. 그래, 난 꼭 보통 사회에 편입되고 싶던 건 아니었다. 그 사회 밖에서 멋있을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그렇다고 탐색해 볼 정도의 의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난… 보통 사회 바깥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로 세상을 살아가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도망치는 게 아니라, 나의 답을 찾아가는 형태로.
집에만 있으면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는 게 싫어서 고립감 해소만을 목적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다닐 단계는 지났다는 말. 언제까지나 ‘고립은둔청년’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건 나도 동의한다. 그리하여 나는 ‘탈고립청년’ 키워드를 내세우고 있다. 아직 두려움투성이지만 나 자신을 사회로 내모는 것일 수도 있겠다. 때로는 압박을 느끼기도 한다. 어느 정도가 적절한 자극이고 어느 정도가 과도한 압박일까. 개인밀착 프로그램의 절반이 지나갔지만 이것저것을 수면 위로 끄집어냈을 뿐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다.
툭 치면 쏟아질 것처럼 쌓여 있는 것들을 해소할 방법을 찾기에 앞서, 내가 할 수 있는지와는 별개로 스트레스 해소법이 무엇이 있을지 찾아보는 과제를 받았다. 자료를 정보로 만드는 건 좋아하지만 자료 자체를 찾는 건 굉장히 싫어하는 나는 결국 또 자료 조사는 외주를 맡기기로 했다. 생성형 AI 녀석들은 이상적인 말만 할 것 같아서 주변 사람들의 사례를 찾아보았다. 함께 사업에 참여하는 동료 청년들은 어떤 방식을 사용하는가. DM으로도 받고, 직접 만나서도 물어봤다. 운동(자전거, 달리기 포함), 명상, 감정 일기, 노래 듣기, 수면, 간식 먹기, 게임, 실탄사격장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프로작이니 세로토닌이니 하는 것들은 잘 모르겠다. 편한 사람을 만나서 대화하는 것도 좋다는 말은 같이 듣던 이들도 다들 동의하더라. 나의 특성도 강점과 약점으로 해서 생각해 가야 하는데 막상 떠올리려 하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역시 자기 이해는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