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 망각

2025년 11월 20일 목요일 을사년 정해월 계사일 음력 10월 1일

by 단휘

언젠가 흥미롭던 무언가는 어느 순간 기억에도 남지 않고 무의식 저편으로 사라진다. 한참이 지난 뒤에 우연한 계기로 무의식 너머에서 그것이 쿼리 되어 나올 때 그제야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있었지, 하고 떠올릴 뿐이다. 그런 것들이 종종 있다. 가장 친하게 지냈던 반 친구를 다음 해 반이 갈리며 잊고 지내다가 (연락을 안 하고 지낸 걸 넘어서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다) 다시 같은 반이 되어서야 '맞아 쟤, 나 쟤랑 친했는데' 하고 인지한 적도 있다. 한 학년에 90명도 안 되는데 그냥 같은 반 애도 아니고 가장 친했던 녀석을 그렇게까지 잊을 수 있나 싶더라.


살면서 내 흥미를 끌었던 것도 여럿 있었다. 아마 그럴 것이다. 이마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앞으로는 기억날 때마다 기록을 해놓는 게 좋을 것 같다. 방에서 잘 나가지 않던 시절에 공부했던 것도 대체로 까먹었다. 그런 걸 공부했었다는 사실 자체마저 까먹었다. 이런 일이 종종 있었던 것 같은데 구체적인 사례는 떠오르지 않는다.


어떤 기억은 무의식 너머에서 쿼리 할 때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형태로 나온다. 누군가와 어디에 갔던 일을 떠올리지 못하다가 딱 떠올랐을 때, 사람들의 자리 배치를 기억한다거나 어떤 옷을 입었는지 기억한다거나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기억한다. 다만 그렇게 완벽하게 보존되는 게 무엇인지는 무작위적으로 결정된다. 어떤 장면에서는 구조적인 게 유독 기억에 남을 수도 있고 어떤 장면에서는 대화에 담긴 정보가 유독 기억에 남을 수 있다.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지 감도 안 잡히는 능력이다.


어떤 기억은 끝까지 두루뭉술한 무언가로 떠다닌다. 뭔가 구체화해서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가도 흩어진다. 마치 무의식이 그것을 떠올리지 말라고 흩어놓는 것처럼 흐려지기도 한다. 집중하려 할수록 주의가 분산되는 느낌. 뭔가 있었던 것 같은데 뭐였더라. 하지만 역시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기억은 관련된 기록이라도 있는지 찾아보기도 한다. 늘 그런 건 아니고, 어렴풋한 기억이 내 호기심을 자극할 때. 시기를 알면 그래도 어느 정도 자료가 있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은 유용한 기록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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