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뒤섞임
2024년 11월 6일 수요일 갑진년 갑술월 갑술일 음력 10월 6일
상호작용하는 사람의 급증으로 인한 것일까, 때로는 어떤 대화를 누구와 나누었는지 기억이 뒤섞인 채 헷갈릴 때가 있다. 내가 이 이야기를 이 사람에게 했던가? 이 이야기를 나에게 했던 게 이 사람인가? 그 어떤 불확실성 속에서 상대를 대할 때가 있다. 게다가 끼리끼리 논다고, 내 친구들이 묘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도 해서 더욱 헷갈리는 것 같다. 그래서 결국 이 사람과의 대화였다는 게 확실하지 않은 내용은 기억이 안 나는 셈 치고 활용하지 않는 정보로 묻어두는 경향이 있다.
나의 외모 취향에 대해서는 알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나는 성별을 가리지 않고 어깨 정도부터 가슴 정도까지의 머리 길이를 좋아한다. 여성 분들 중에는 종종 그 정도 머리 길이를 가진 사람들이 있지만 남성 분들 중에는 흔치 않다. 그 흔치 않은 걸 하고 다니는 대표적인 녀석이 이반이었고 (정확히는, 초면일 때는 내가 좋아하는 머리에 진입하는 어깨 정도였고, 연애를 시작할 때는 그 머리 길이 범위를 넘어설 정도로 길었다가, 취업 준비한다고 확 자르고, 다시 기르려는데 덜 길러진 상태에서 헤어졌는데... 머리 짧아서 헤어진 건 아니다. 아무튼 진짜 아니다.) 내가 그런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걸 깨닫게 해 준 녀석이 쥴이었지. 하여간 주변에서 보면, 어린 시절 머리 자르기 싫어서 미용실에서 뛰쳐나가 도망친 녀석도 있고, 학생 때 머리 자르기 싫어서 담 넘어 다닌 녀석도 있고, 머리 길러본 경력이 있는 언젠가의 소년들이 여럿 있단 말이지. 이런 공통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리고 INFP에 대한 건 늘 의문이었다. 전반적으로 INFP가 많은 걸까 아니면 내 주변에 유독 많은 걸까? MBTI 얘기가 나오면 자기가 INFP라고 하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내가 대부분의 MBTI를 줄여 부르는 이름들은 들으면 바로 인지가 안 되고 의식적으로 풀어쓰기를 해야 알아들어 소통에 딜레이가 있는데, INFP를 인프피라고 하는 건 너무 자주 들어서 기억을 할 수밖에 없더라. 내가 보기에 머리 길러본 사람과 INFP를 제외하면 내 친구 중에는 남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심지어 그 교집합도 한두 명이 아니야.
구체적인 사례를 들기 애매한 공통점들도 있다. 하여간 그 비슷비슷한 녀석들 사이에서 내가 어떤 이야기를 누구에게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을 땐, 일단 상대가 그 정보를 모른다고 가정하고 이야기하곤 한다. 가끔은 이야기한 기억이 없는 내용에 대해서도 그 사람이 알고 있어서 언젠가 이야기하고 까먹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될 때도 있다.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내용은 기록해두려고 하는 편이지만 누구랑 어떤 대화를 했는지까지는 기록해 두기 뭐시깽이 하잖아? 애초에 시간이 지나면 어떤 대화를 했는지 두루뭉술한 무의식의 영역으로 흩어져버려 잘 떠올리지 못하고, 그렇다고 실시간으로 작성하기엔 좀 이상해 보인다.
그렇게 뒤섞인 채 헷갈리는 정보들은 대체로 대화에 큰 지장을 주지는 않는 영역이기에 문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너무 궁금할 때도 있을 뿐이다. 나랑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게 너냐, 하고 직접적으로 물어보기도 애매하고 말이다. ―라고 하며 다들 편하게 물어보라고 할 것 같기는 한데, 아무튼 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