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7일 일요일 갑진년 을해월 을유일 음력 10월 17일
첫인상으로 모든 걸 판단하지 말라고 하지만, 첫인상에서 나오는 무시 못할 무언가가 있다. 상대를 마주한 순간 그 사람과의 상성 및 친밀도의 한계가 어느 정도 인지된다. 그것이 수치화되거나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표현이 있다면 얘기하기 수월하겠지만, 그것은 감의 영역이라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 일종의 관상학적인 무의식의 통계인가.
이 사람과는 상성이 좋지 않아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기는 힘들겠구나 싶은 사람 중 일부는 선입견에 의해 척지지 않아도 될 사람을 척지지 말자며 나의 판단을 무시하고 상호작용하기도 한다. 몇 년째 몇 명씩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나의 그 '선입견'의 반례를 찾아내지 못했다. 역시 슬슬 포기하고 나의 무의식적 판단을 믿어버리는 게 불필요한 인간관계의 마찰을 줄이고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상성 안 맞는 사람하고는 처음부터 선을 그어버리면 갈등이 생길 일이 없잖아.
그럼에도 다시 반례를 찾아 나서는 건 나름의 기대 때문이다. 언젠가 그런 예외적인 존재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역시 쉽지 않다. '첫인상에서 나오는 무시 못할 무언가'라고 했지만, 그건 첫인상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그냥 늘 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무언가니까. 매번 나랑 안 맞을 게 훤히 보이는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려고 하는 건 썩 유쾌한 감각은 아니다. 단지 그걸 넘어선 관계를 구축해 보고자 하는, 일종의 나의 욕망 같은 걸까.
그래도 친구의 친구 정도로 소개받아,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유지된 관계가 하나 있긴 하다. 나는 그 사람과 상성이 안 맞을 게 예측되기도 하고, 실제로 안 맞는 부분이 종종 느껴지기도 하고 해서 적당히 흘려보내며 지냈다. 가끔 그 사람이 자신이 나랑 잘 맞는다고 주장할 때면 거부감이 들긴 했지만 굳이 반대의 말을 하지는 않았다. 결국엔 상성이 맞지 않는 사람하고는 적당히 흘려보내며 지낸다면 어느 정도 관계를 유지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의 관계를 형성할 수는 없다는 걸 느끼게 해 준 사례다. 지난겨울에는 자기가 무슨 내 친구라도 된 것처럼 행동해서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이제는 그런 관계성에 대한 것도 그냥 알아서 지껄이라고 놔두고 있다.
진행 중이던 반례 찾기 도전에서 그나마 남아있는 건 저 사람 한 명뿐이고, 나머지는 진작에 내 삶에서 사라졌구나. 아마 저 정도를 한계점으로 인식하고 앞으로는 반례 찾기 도전을 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쓸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을 테니, 그건 부정적인 관계를 상쇄하는 데 쓰기보다는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데 쓰고 싶다. 상성이 안 맞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나면 적당히 선을 그으며 거리를 두고 지내야지. 굳이 처음부터 적대시할 이유도 없으니 불필요한 상호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거리를 두는 것이다. 어느 정도 거리감을 유지한 채 지내면 집단 내 다른 구성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은 채 그 사람과 상호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