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휘 Nov 18. 2024

#75 청계천

2024년 11월 18일 월요일 갑진년 을해월 병술일 음력 10월 18일

내 삶의 80% 이상을 청계천 하류 언저리에서 살아왔다. 청계천이 시작되는 청계광장 언저리보다 중랑천으로 합쳐지는 살곶이다리 언저리가 더 익숙하다. 어린 시절 초등학생 때는 학교에서 두 학년씩 구간을 나누어 청계천을 따라 어느 정도 거리까지 걸어갔다 돌아오는 걷기 대회를 시키곤 했다. 나름 청계천 근처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타의적으로 간 것을 제외하면 내 삶에 청계천과 유관한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지난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청계천을 따라 걸었다. 청년이음센터 출신 청년들 중 일부가 각자의 동네 언저리에서 서울유람이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주최하고 동네를 구경하며 거닐곤 한다던데, 대충 비슷한 느낌으로 파티원을 모아 보았다. '상류→하류'의 선택지와 '하류→상류'의 선택지로 어느 것을 선호하는지 수요조사를 하며, 참여는 안 할 거지만 투표는 하고 싶다는 미묘한 심리를 가진 녀석들이 있기에 '그런 거 안 해!' 하는 제3의 선택지도 넣어 두었는데, 실제로 그것을 선택하는 녀석이 두어 명 있었다. (참여 의향이 전혀 없으면서도 제3의 선택지가 아닌 제대로 된 선택지를 누름으로써 수요조사에 방해가 된 녀석은... 이를 포함하여 이것저것 쌓여가며 점점 더 상종 못 할 존재가 되어버렸다.)


편도로 이동하여 도착지 근처에서 카페를 가든 식사를 하든 하다가 해산할 계획이었으나, 파티원이 원하고 나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하여 식사 후 다시 출발지로 돌아가는 왕복 형태로 진행되었다. 생각보다 내 체력이 나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청계천에 종종 가게 된 것 같다. 기분 내키면 청년기지개센터 공간에서 집에 갈 때도 동대문역 언저리까지 걸어가 청계천을 따라 걷는 경우도 꽤 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 40분 정도 걸리고 걸어서 가면 그 두 배 정도 걸리더라.


이제는 익숙해진 구간도 있고, 어디가 어디쯤인지 헷갈리는 구간도 있다. 서울 지리를 늘 헷갈리는 녀석이라, 청계천만이라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으면 서울 중앙에서 동쪽으로 뻗는 일부분이라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싶기도 하고. 몇 번을 걸어도 뭐가 어디쯤인지 잘 모르겠는 곳들도 있다. 무학교 언저리에서 상왕십리역 방향으로 빠질 수 있고... 평소에 자주 진입하는 지점은 나래교와 다산교 사이의 어딘가인 모양이다. 지도를 좀 살펴보며 '여기가 여기께구나' 하는 걸 알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최근에 불광천을 거닐면서 새삼 느낀 건데, 청계천 다리들은 이름이 잘 안 보이는 경우가 많아 의식적으로 파악하려고 하지 않으면 각각의 다리 이름이 잘 인지되지 않는다.


찾아보니 청계천은 대략 11km가 조금 안 되는 길이라고 한다. 어 이거... 여기서 10km 코스 연습하는 사람도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무학교부터 청계천 하류까지가 3km 언저리라고 알고 있고... 청계천에서 러닝 하는 사람들도 많던데 확실히 여기서 본격적으로 유산소 운동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일단 돌던 서울둘레길이나 다 돌고 생각해 봐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