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있으면 아침이 오겠지
낮밤이 바뀌었다. 아침을 맞이하지 못한지 벌써 며칠째다. 팔자 좋은 백수이거나 가여운 프리랜서인 까닭이다. 퀭하고 비실비실하게 몇 날들을 보내던 끝에 몇 가지 단상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래 오늘은 날이다. 다시 아침을 되돌려야 하는 날.
책을 집어 들었다.
우연히 알게된 시인, 그리고 곧 마주하게 될 어떤 시인의 책이었다. 겨우 문장 하나로 누군가의 삶에 큰 존재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 새삼 나를 보며 느꼈다. 그는 알까.
그의 문장들을 읽다가 책을 덮고는 여러 생각에 잠겼다. 그가 나의 잠을 방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내 꿀잠을 도운 것도 아니었다. 나는 점점 더 깨어났다. 누운 몸을 일으켜 앉고 말았다.
누군가와의 만남 끝에 내가 남긴 마지막 말은 무엇이었나 떠올려봤다. 그 사람과 두 번 다시 볼일이 없다면 그 말은 곧 (시인의 표현에 의하면) 나의 유언인 셈이었다. 혹 내가 내일 죽는다면 오늘 만난 이들과 나눈 대화 역시 나의 유언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오늘 내가 아무렇지 않게 만났던 누군가가 내일이면 영영 못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 하여 시인은 가능하면 항상 따뜻하고 예쁘게 말을 하려 한다고 했다.
나는 꽤 못난 사람이다.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정작 아주아주 가까운 이들에게는 냉랭하기 짝이 없다. 물론 대부분은 나의 그런 화법이 익숙한 이들이지만. 허나 나의 마지막 말을 기억해줄 이들은 내가 좋은 말을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보다는 나의 냉랭함을 견뎌준 이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하루 아침에 달라질 수는 없다. 게다가 아침을 오랜만에 맞이하는데. 열흘 아침 정도는 더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이것도 핑계라는 걸 안다. 눈 깜박하면 곧 새해일테니까. 새로운 해를 기다리며 들떠있는 12월과 달리 11월엔 감사함과 동시에 죄책감이 몰려온다. 계획을 다 이루지 못하는 건 매년 똑같은데 거창한 계획을 다시 짜는 것도 매년 똑같다.
그래도 올해가 가기 전에, 가까운 이들에게 조금씩 더 따뜻한 예비 유언을 남기는 인간이 되어보려 다짐한다. 그러면 나도 아침 햇살 그림자 정도의 따스한 사람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