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아무나 투자해 주면 좋겠다고요?
투자유치를 위해 무턱대고 투자자를 많이 만나는 게 꼭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우리 사업과 잘 맞는 투자자를 전략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빠른 기간 내에 투자유치를 마무리하고 더 중요한 사업에 다시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사업의 단계에 따라 그에 맞는 투자자가 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투자금액을 보는 것입니다. 업계에서는 이를 티켓 사이즈(또는 체크 사이즈)라고 얘기합니다. A라는 VC가 가장 많이 하는 투자 금액이 5억 원이라면 A의 티켓 사이즈는 평균 5억 원입니다. 만약 제가 10억 원 규모의 투자유치를 고려 중이라면, 티켓 사이즈가 2~10억 원 사이인 VC를 주로 고려할 것입니다. 한 곳이 10억 원을 투자하거나 5억, 3억, 2억 이렇게 세 곳의 VC에게 나눠 투자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많이 쓰는 방법은 투자 유치 기사를 검색하는 것입니다. 투자를 희망하는 금액대(예: 10억 원대)에 해당하는 기사를 찾아 투자에 참여한 VC가 누구인지 알아봅니다.
the VC라는 웹사이트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아래 화면처럼 최근 투자가 이루어진 건을 시드~프리 A, 시리즈 A, 시리즈 B~C 등으로 분류해 정보를 제공합니다. 해당 투자건을 클릭하면 참여한 투자사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투자 단계가 반드시 투자 금액으로만 분류되는 건 아니지만, 초기 창업자라면 보통 시드~프리 A 단계는 1~20억 원 사이, 시리즈 A는 20~100억 원 정도로 봐도 무방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어느 단계의 투자자를 만나야 하는지 가늠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VC 투자는 펀드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펀드는 목적성을 가진 돈입니다. 펀드에 돈을 대는 곳을 LP(Limited Partner), 운용하는 곳을 GP(General Partner)라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VC는 펀드를 목적에 맞게 운용하는 GP, 즉 운용사라고 보면 됩니다.
한국은 벤처 생태계에서 정부의 역할이 매우 큽니다. 벤처 생태계에 투자되는 거대한 정부 재원을 모태펀드라고 합니다. 아래는 2024년 상반기 모태펀드가 선정한 분야별 GP입니다. 여기서 '분야'를 보면 펀드가 가진 주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창업자 자신 및 우리 사업과 가장 관련성이 높은 펀드를 찾고, 해당 펀드를 운용하는 VC가 어디인지 파악하는 것입니다.
벤처투자종합포털이라는 웹사이트를 이용하면 모태펀드 출자를 받은 모든 투자사를 검색할 수 있습니다.
위 메뉴로 들어가서 나와 관련된 업종을 체크하고 검색하면 관련 펀드와 이를 운용하는 운용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가 화학 기술을 바탕으로 신소재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라면 아래와 같이 주요 투자업종에서 '화학/소재'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소재지나 결성총액 등 다른 항목은 모두 전체를 선택합니다.
검색하면 아래와 같이 결과가 나옵니다. 검색 결과를 '결성일' 기준 내림차순으로 정렬하면 가장 최근에 조성된 펀드부터 나옵니다. 최근에 조성될수록 재원이 많고 투자여력이 큽니다. 이것이 제가 펀드를 기준으로 만나야 할 VC를 리스트업 하는 방식입니다.
펀드뿐 아니라 국내에 등록된 모든 투자기관을 지역별, 규모별로 검색할 수 있으니 전체 VC 리스트를 만들 때에도 활용하기 좋습니다.
이제 이야기한 방법들을 활용해서 우리 회사를 위한 잠재 투자자 리스트를 작성하기 바랍니다.
1. 전체 VC를 리스트업 합니다. 벤처투자종합포털 등의 사이트에서 투자자 검색을 활용합니다.
2. 티켓 사이즈 기준 우리 단계에 맞는 VC를 표시합니다.
3. 펀드의 주목적이 우리 사업과 연관된 펀드를 운용하는 VC를 표시합니다.
4. 우리 사업을 포함하는 카테고리에 투자 경험이 있는 VC를 표시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사업이 결제 관련 사업이라면 핀테크 투자 경험이 있는 VC에 표시합니다.
2~4번 중 겹치는 게 많을수록 우선순위가 높은 VC입니다. 이 기준으로 VC 리스트에서 우선순위를 업데이트합니다. 우리 사업이 속한 카테고리에 투자 경험이 있는 VC는 좋지만, 사업 아이템이 겹치는 경쟁기업에 투자한 경우에는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 이슈로 투자를 안 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물론 경쟁 관계지만 격차가 크고 협업 포인트가 있다면 예외가 됩니다.
위 과정을 통해 우리 사업과 핏이 맞는 VC가 어디인지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저의 경우, IR에 나서기 전 투자자 리스트부터 작성합니다. 기존 주주, 공동창업자, 팀원, 지인 등 활용 가능한 네트워크에 리스트를 전달하고 최대한 소개를 요청합니다. "투자자 좀 소개해 주세요." 보다 "A, B, C 중 컨택이 있는 곳 소개해 주세요."가 훨씬 프로답고, 당연히 투자로 이어질 확률도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