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덱은 사업 계획서와 다릅니다
"대표님, 피치덱(Pitch Deck) 있으면 하나 보내주시겠어요?"
투자자에게 회사를 소개할 기회가 생기면 이런 요청을 받게 됩니다. '피치덱 = 사업 계획서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목적이 조금 다릅니다. 피치덱은 투자자와 미팅을 만들기 위한 역할을, 사업 계획서(또는 사업 소개서)는 미팅을 통해 사업을 깊게 이해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투자 유치용 피치덱에 정해진 포맷이 있는 건 아니지만, 좋은 피치덱은 간결하면서도 중요한 요소를 포함합니다. 아래 링크는 유튜브, 에어비앤비, 페이스북과 같은 실리콘밸리에서 전설이 된 기업들의 꼬꼬마 시절 피치덱(Pitch Deck)을 모아놓은 곳입니다.
개인적으로 에어비앤비의 피치덱이 초기 창업자가 벤치마킹하기에 좋은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의 끝판왕입니다. 숫자를 밸런스 있게 잘 활용하기도 했고요. 부연 설명이 없어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작성했습니다.
에어비앤비의 피치덱을 보면 피치덱에 들어가야 할 핵심 요소가 보입니다. 해당 자료를 기반으로 피치덱에 들어가야 할 필수 요소 10가지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 봤습니다.
우리 사업이 해결하고 싶은 시장의 문제를 얘기합니다. 에어비앤비의 경우, 기존 호텔 숙박이 가진 가격과 경험의 획일성을 문제로 이야기합니다.
앞서 언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만의 관점, 방식, 기술을 이야기합니다. 에어비앤비는 게스트와 호스트를 연결하는 웹 플랫폼으로 정의했습니다.
보통 TAM, SAM, SOM을 나눠 시장 규모를 추산합니다. 에어비앤비는 온라인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방을 예약하고자 하는 시장을 SAM(Serviceable Available Market)으로 잡고, 자신들이 15% 시장점유율을 SOM(Serviceable Obtainerble Market)으로 가져갈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TAM(Total Available Market)으로 전 세계 여행 예약건수를 보여줌으로써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시장과 그 규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TAM, SAM, SOM이 더 궁금한 분은 아래 블로그를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현재 제품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표입니다. 에어비앤비는 사용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화면(도시별 검색 -> 결과 리스팅 -> 예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장표는 웹사이트에서 도시별 검색을 통해 숙소를 예약할 수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어떻게 돈을 벌지 이야기하는 장표입니다. 에어비앤비는 결제액의 10%를 커미션으로 받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를 특정시점까지 예상되는 거래건수와 연결해 예상 수익을 담았습니다. 재밌는 점은 에어비앤비는 시장규모를 온라인에서 방을 빌려주는 거래 건수로 보여줬다는 점입니다. 에어비앤비 이전에는 추산된 시장규모가 없었을 테니까요. 여기에 자신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입혀 비로소 시장규모가 나온 것이죠. 시장을 새롭게 개척하는 스타트업이라면 참고해 볼 지점입니다.
사업의 핵심지표는 무엇인지, 이 지표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에어비앤비 피치덱에서 이 부분이 아쉬웠습니다. 핵심지표 대신 피치덱 마지막에 고객 후기(User Testimonials)만 넣었기 때문입니다. 당시가 극초기여서 보여줄 만한 지표가 없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MVP 단계에서라도 사용자수, 전환율, 리텐션, 추천지수, 사용자 평점 등 가능한 정량화하고, 핵심 지표를 정의해 장표에 포함하는 것이 좋습니다.
에어비앤비는 이를 Adoption Strategy(채택 전략)라는 이름으로 만들었습니다. 요지는 스타트업이 가진 적은 예산과 상대적으로 낮은 브랜드 파워로 어떻게 우리 제품을 고객에게 알릴 것인가에 대한 계획입니다.
기존 플레이어들은 누구이고, 우리는 어떤 포지션에서 경쟁하는지 설명합니다. 각자의 강약점을 분석하고 우리의 경쟁우위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공동 창업자 및 주요 구성원을 설명하는 장표입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중요하게 보는 내용입니다. 에어비앤비는 세 명의 공동창업자가 현재 맡고 있는 역할, 그리고 기존에 쌓은 이력 중 임팩트 있는 것을 추려 장표를 구성했습니다.
투자 라운드의 개요를 설명합니다. 에어비앤비는 50만 달러의 엔젤 라운드를 위해 이 피치덱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투자금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도 함께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피치덱을 구성하면 표지를 포함해 11장으로 구성된 덱이 완성됩니다. 사업의 성격에 따라 강조하고 싶은 장표를 한두 가지 추가하는 정도로 하면 됩니다. 좋은 고객 사례가 많다면 Key Metrics(핵심 지표)와 별개로 고객 후기 장표를 추가할 수 있을 겁니다. 2~3년 부트스트래핑을 통해 수익을 내왔다면 Financial에 장표를 추가할 수도 있을 거고요. 피치덱은 가능한 쉽고 간결하게, 분량은 15장을 넘지 않는 것을 추천합니다.
피치덱이 짧고 간결해야 하는 이유는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사업의 전부를 보여주는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업의 핵심을 전달해 투자자의 관심을 사고, '만나서 제대로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목적입니다.
창업자라면 두 가지 버전의 사업 소개 자료가 필요합니다.
1) Short 버전 소개서: 미팅을 이끌어내기 위함 → 피치덱
2) Full 버전 소개서: 미팅 또는 IR 발표를 위함 → 사업 계획서(또는 사업 소개서)
많은 창업자들이 풀버전 소개서 하나로 퉁치는 것을 자주 봅니다. 풀버전 소개서에는 우리 회사의 연혁부터 노하우까지 세부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핵심을 파악하기 힘들고, 사업자 입장에서는 의도치 않게 영업기밀을 노출할 수 있습니다. 본격적인 투자 검토 시점이 아니라면 15장 이내의 숏버전 피치덱을 만들어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팁을 하나 드리면, 저는 영업 기밀이나 구체적인 사업 계획은 피치덱에서 제외합니다. 피치덱을 먼저 공유해 관심 정도를 타진합니다. 초도 미팅을 하고 심사역이 본격적으로 투자 검토를 하는 단계에서 NDA를 맺고 풀버전을 공유합니다. 이런 행동이 괜히 투자를 더 까다롭게 만드는 것 아닐까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투자자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