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니엘 Sep 04. 2024

통장에 꽂히기 전까지 끝난 게 아니다

투자유치 때마다 되새기는 말

스타트업 업계에서 흔하게 하는 말이지만 직접 겪고 나서는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제 에피소드를 하나 들려드릴게요.




2018년 초였습니다.


당시 제 회사는 해외송금업 라이센스 취득을 위해 15억 원 규모의 투자유치를 진행하고 있었어요. 그 이전까지 개인 등 엔젤 투자는 있었지만, 처음으로 VC 기관투자 유치에 나섰습니다. 기존 주주의 소개로, 잘 알려진 VC의 임원급 심사역 J를 소개받게 되었죠.


J와의 첫 미팅부터 분위기가 괜찮았습니다. 얼마 후 연락이 와서 투자 검토를 진행해 보겠다고 했죠. 그런데 J는 큰 딜에 집중하고 있어서 티켓 사이즈가 작은 우리 회사의 투자건을 같은 팀 심사역, K에게 연결해 주었습니다. 이번에는 K와 미팅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간 많은 자료와 이메일을 교환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일신상의 이유로 K가 더 이상 투자 검토를 진행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결국 또 다른 심사역 S팀장에게로 넘어갔죠.


앞에서 두 심사역과 했던 것을 다시 반복했습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씩 다른 버전의 자료 요청, 그리고 미팅, 또 수많은 이메일, … 또다시 한 달을 새로운 심사역에게 사업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예비투심 IR이 잡혔고, 투자심의 회의장에 가서 발표도 했죠. 내부 반응이 좋다고 했어요. 며칠 후 예비투심 통과 되었다며, 남아있는 최종 본투심은 이변이 없는 한 될 것 같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텀시트(투자조건이 들어있는 문서)도 받았고요.


방심했어요. 아니 방심하고 싶었어요. 이 하우스 하나가 모집하는 전체 금액을 투자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4개월 넘게 공들여 에너지를 다 쓴 상태였기 때문에 한방으로 끝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다른 VC와는 미팅을 하지 않았죠. 결국 본투심에서 투자가 부결되었어요. S팀장은 연거푸 미안하다고 했지만 무슨 소용이겠어요. 순진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제 잘못이죠. 4개월을 날리고 회사 계좌에는 3개월치 운영 자금만 남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이 경험을 계기로 투자유치 때마다 실천하는 원칙이 있습니다.


1. 투자유치는 최소 12개월 이상 운영 자금이 있을 때 미리 나선다.

2. VC 한 곳에 에너지를 집중해 쓰기보다는 한 곳이라도 더 만난다.

3. 공통적으로 요청하는 자료를 템플릿화 한다. (VC마다 자료를 따로 만들지 않는다)

4. 투자금 납입 전까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 라운드 막바지에도 신규 VC를 만나고, 만나고 있던 곳과도 계속 논의를 이어 간다.

5. 납입 완료 시 비로소 모든 잠재 투자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투자유치 활동을 마무리한다.


스타트업 대표에게 투자유치는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에너지 소모가 큰 과정입니다. 몸과 마음이 편한 방향을 찾게 되고, 희망회로를 돌리게 됩니다.


‘IR 분위기 좋았잖아, 될 것 같은데’

‘설마 여기서 잘 못 되겠어’

‘투심까지 온 마당에 다른 곳 또 만나야 하나’


투자자도 거절하는데, 회사도 거절할 수 있죠. 오히려 골라서 투자받을 정도의 상황을 만들어 놓고, 일부 투자자에게 양해를 구하는 게 낫습니다. 투자가 막바지에 왔다고 생각될 때, 힘들더라도 한 번 더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통장에 돈 꽂히면 그때 일주일 푹 쉬자. 그때까지는 아무것도 안 끝난 거야.'





이전 07화 투자계약서의 핵심 포인트 이해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